사면초가 현재현 회장의 '해명'

동양 CP 사태 후폭풍 - 임직원 반발에 "시멘트 법정관리 불가피"

'시멘트 주식 담보 CP 1000억 발행' 논란 커질듯…일부 임직원 "증권직원 자살 속 부적절한 해명"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3일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또 경영권을 포기했다고 하면서도 채무 상환을 위한 역할은 계속 맡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날 동양증권 임직원 200여명은 서울 성북동 현 회장 자택 앞에서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침묵 시위를 벌였다.

현 회장은 이날 저녁 출입기자들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자금유치 협상과 자산 매각이 모두 무산돼 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긴급히 법원에 모든 결정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시멘트와 네트웍스는 채권단 자율협약이 유력했지만 지난 1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 회장은 그동안 침묵을 지켰지만 “경영권 유지를 위해 시멘트와 네트웍스를 법정관리로 보낸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직접 해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현 “시멘트 법정관리는 5억 빌려 부도 막을 상황서 결정”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사진)은 3일 오후 6시20분께 회사 메일이 아닌 개인 메일(tongyang.hyunjaehyun@gmail.com)을 통해 ‘동양 회장 현재현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보냈다. 이 글은 현 회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현 회장은 “동양시멘트 법정관리는 전날 오후 6시가 넘어 현금 5억원을 빌려서 부도를 막을 만큼 긴박한 상황에서 결정됐다”며 “동양네트웍스 역시 계열사 간 지급이 장기간 미뤄지면서 부도에 직면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수백여개 중소 협력사의 연쇄 부도 등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현 회장은 “뒤늦은 (투자나 계열사 인수) 제안을 받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는 내용들”이라며 “추가 대출이나 자산 매각을 통해 사태 일부를 수습하는 방안은 해결책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룹 전체 채무가 2조3000억원에 달하고 올해 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금액만 1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시간 연장책은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자율협약을 추진했던 채권단을 의식한 듯 “회사 회생이 주목적인 법원이 은행권의 이해관계도 회사와 일반 투자자들을 위해 현명하게 조정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또 “은행권과의 대화는 법정관리 아래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현 회장은 기업어음(CP) 등의 불완전 판매 논란으로 동양증권 임직원들이 곤경에 빠진 것과 관련해 “동양 임직원들을 움직인 모든 의사결정은 저의 판단과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동양증권 직원들 역시 회사가 내놓은 금융상품을 최선을 다해 파는 소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저의 최대 과제는 투자자 피해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 전부터 저에게 있어서 경영권 유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며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없었다”며 “오랜 시간 회사와 제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담보로 CP 차환 문제만을 우선 해결하고자 했다”고 했다.

특히 현 회장은 “전체 CP 차환 규모는 분명 저희 일부 우량 자산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규모라고 믿는다”며 “이와 관련된 모든 일에 제 역할이 없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저의 책임을 물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오래 전부터 경영권을 유지할 생각이 없었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포기하게 됐다고 하면서도 향후 채무 상환을 위한 일정 부분의 경영 참여는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이에 대해 일부 동양 직원들은 현 회장의 이메일 내용이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동양증권 직원이 CP 불완전 판매 논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회장이 직접적인 사과나 위로 없이 법정관리 신청의 당위성만 주장했다는 것이다.

또 채무 상환을 위한 역할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법정관리 신청을 통한 경영권 유지라는 의도를 숨긴 것을 인정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 동양 관계자는 “CP 상환이 지상과제인 것처럼 말하는데 사기범으로 몰리게 된 동양증권 직원들과 법정관리 신청으로 투자금을 모두 날리게 된 CP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시멘트의 재무 상태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면 법정관리 직전에 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100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한 것은 사기가 된다”며 “지금이라도 법정관리 신청을 철회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