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동네북?…상임위 3곳서 동시 호출

기업인 마구잡이식 증인채택…무늬만 정책국감

무리한 문제제기 다수…정치권서도 비판
증인 많아 말 한마디 않고 돌아가기도
< 자료 보는 복지부 차관 >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오른쪽)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기 위해 직원에게서 자료를 건네받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될 것으로 예상되는 마구잡이식 기업인 증인 채택에 대해 재계는 물론 정치권 내에서도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상임위마다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위주로 증인을 채택하다 보니 여러 상임위원회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 하는 케이스도 다수 등장했다.

7일 국회에 따르면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는 정무위 산업통상자원위 환경노동위 등 무려 3군데 상임위에서 초청장(?)을 받았다. 정무위는 대형마트의 불공정 행위, 산업위는 신규점포 출점 과정에서의 주변 상인에 대한 금품 제공 의혹, 환노위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 등을 각각 도 대표에게 추궁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메모리사업부장) 역시 산업위와 환노위에서 출석 요청을 받았다.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 등 의혹을 해소한다는 명목에서다.문제는 이들 증인을 불러낸다 하더라도 현안이 많고 일정이 촉박한 국감에서 진상 규명이나 사실 관계 확인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야가 표방하는 ‘정책 국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증인도 다수 채택됐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취임 과정에서 논란이 된 낙하산 인사 의혹을 푼다는 명목으로 증인 명단에 올랐다. 김종준 하나은행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김양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등은 금융지주사들이 은행 경영에 너무 간섭한다는 문제 제기로 증인 출석을 요구받았다.

업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은행장은 취임 과정에서 이미 낙하산 의혹에 대해 해명했고, 금융지주사의 은행 경영 간섭 문제 역시 국회가 증인 채택을 할 정도로 큰 이슈가 아니다”며 “매년 대형 금융회사의 CEO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걸 군기잡기용 관행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산업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나완배 GS에너지 부회장 등 48명의 국감 증인 명단을 채택했다. 48명 중 민간기업 관계자는 27명으로 56.3%에 달했다. 환노위도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등 40명(민간기업 관계자 14명)의 증인을 소환하기로 결정했다. 무분별한 국감 증인 채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무위 소속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국감에 참석하는 증인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가는 증인이 상당수”라며 “확인 사항 중에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게 많아 그룹 CEO보다 내용을 잘 아는 실무 책임자들을 부르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박신영/배석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