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 기로에 선 신흥국…20억 시장을 가다] 자원대국서 소비대국 급부상…슈퍼리치 증가율 아시아 1위

(4) 인도네시아 下

페라리차 최다 구매 국가 2위…국내 소비가 GDP의 55% 이상
중산층 두터워지며 내수 탄탄…글로벌 유통업체들 격전장으로
지난달 26일 자카르타 현지인이 자주 찾는 스망기몰에 쇼핑 나온 여성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내수가 국내총생산의 55%를 지탱하는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다. 자카르타=김보라 기자
지난달 25일 자카르타에서 만난 운전기사 조코 술리스토(38)는 한 달에 300만루피아(약 30만원)를 번다고 했다. 그가 갚아야 하는 할부 대금은 스마트폰, 오토바이, TV와 아파트 등 네 종류다. 그는 ‘대출금리가 10%가 넘는 것도 있는데 할부금 내기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식용유·밥값 등 물가가 올라 전보다 팍팍해졌지만 자카르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산다”며 “천천히 갚아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자카르타의 초호화 쇼핑몰인 그랜드 인도네시아 앞은 BMW, 벤츠, 렉서스, 페라리 등 고급 수입차 전시장으로 돌변했다. 인도네시아가 지난해 페라리 자동차를 가장 많이 사들인 나라 2위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쇼핑몰 정문 앞에 선 차에서는 자녀 1명당 유모 1명을 데리고 경호원까지 대동한 여성들이 줄지어 내렸다. ‘자원대국’ 인도네시아가 ‘소비대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국내 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내수 시장 중심 경제다. 수출주도형인 태국과 말레이시아 경제와는 다른 구조다. 내수 경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산층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2009년까지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 중산층은 두 배 늘어 9300만명에 이른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와 세계은행은 인도네시아 중산층(연소득 3000달러 이상) 수가 1억5000만명까지 늘어나 1조달러의 소비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4년 중산층 1억5000만명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5000만명으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다. 이 중 2010년 기준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은 67.4%다. 도시화 진행 속도도 빠르다. 도시화율은 2010년 53%에서 2030년에는 71%로 높아지고 3200만명의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030년 인도네시아 인구의 50%가 소비계층이 되고 금융, 식음료, 레저, 의류, 교육 분야 성장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자카르타에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스나얀시티, 퍼시픽 플레이스, 그랜드 인도네시아, 폰독 인다 등 수많은 대형·고급 쇼핑몰이 들어섰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는 만큼 인도네시아의 ‘슈퍼 리치’ 증가율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전체 인구의 5%가 채 안 되는 화교가 인도네시아 경제의 70%를 휘어잡고 있다. 200대 기업의 75%, 인도네시아 100대 부자 중 상위 10위 안에서 1명을 제외한 9명이 화교다. 과거 350년간의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당시 행정관리직을 도맡았던 중국인들이 정착한 게 이들의 뿌리다. 스위스은행 율리우스베어그룹은 인도네시아의 고액 순자산가(HNWI·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 100만달러 이상)가 2015년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15년 인도네시아 백만장자 규모 10만명
유통업체 각축장 된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중산층과 슈퍼 리치를 겨냥한 글로벌 유통기업의 경쟁도 치열하다. 롯데마트는 2008년 네덜란드계 대형마트 마크로의 현지 점포를 인수해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내디딘 뒤 현재 3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1조원을 넘겼고, 매출 신장률은 23.5%를 기록했다. GS홈쇼핑도 지난 8월 현지 미디어그룹과 공동으로 24시간 홈쇼핑 전문채널을 열었다. 외식업체 진출도 활발하다. 롯데리아와 CJ뚜레쥬르 비비고 스쿨푸드 본가 등 한국 브랜드들은 자카르타의 대형 쇼핑몰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760개사가 경쟁하는 화장품 시장은 지난 3년간 약 15%씩 성장했다. 인도네시아 소비 경기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는 자동차·오토바이 판매량.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120만대, 오토바이 판매량은 800만대를 넘겼다.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법인의 무키앗 수틱노 법인장은 “일본차가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지만 중산층의 강한 소비성향과 인구 수를 감안할 때 시장 잠재력은 폭발적”이라며 “시티카, 그린카 등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 분야는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이슬람식 문화 ‘소비=미덕’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소비성향에는 종교적인 배경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다. 국교는 아니지만 인도네시아 인구의 약 90%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이슬람교에서는 과소비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슬람교에는 부유한 사람이 매년 재산의 일정 부분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전통인 자캇(자선)의 의무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초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CSR)을 법률로 정한 나라이기도 하다.

시장 규모만 보고 뛰어들기에는 장애물도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 들어 현지 시장에 진출하는 다국적 브랜드를 겨냥한 새로운 규제를 내놨다. 250개 이상의 점포를 가진 식품업체나 매장 수 150개 이상의 편의점은 반드시 현지 직원 수를 늘리도록 했다.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물류 비용 상승도 걸림돌이다. 신현호 롯데마트 인도네시아법인 전략기획팀장은 “물건을 주문하면 도착하는데 5일에서 30일까지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카르타=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특별취재팀 ◎브라질=남윤선 기자, 박래정 LG경제硏수석연구위원 ◎인도네시아=김보라 기자, 이지선 선임연구원 ◎멕시코=노경목 기자, 김형주 연구위원 ◎터키=주용석 차장대우, 정성태 책임연구원 ◎인도=이정선 차장대우, 강선구 연구위원

공동기획 한경·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