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시카고 학파와 노벨상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미국 시카고학파의 산파역이었던 프랭크 나이트 교수(1885~1972)가 경제학도의 필수 요건으로 내세웠던 것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합리성이었다. 이들의 대표적 이론인 ‘합리적 기대가설’도 물론 이런 가르침의 성과였다. 강의 열정도 남달랐다. 그에게 배운 제자들은 경제학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이트는 정작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상복은 따로 있다고 해야 할까.

시카고학파에서 처음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는 나이트의 수제자였던 밀턴 프리드먼(1976)이다. 신화폐수량설을 발표한 지 20년 뒤였다. 프리드먼 이후 시카고학파는 20세기 가장 주목받는 경제학 스쿨로 성장했다. 경제 주체인 인간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거두려는 합리성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가격기능과 각종 경제 변수에 대한 최적화 모형을 찾은 게 이들의 연구 방향이었다. 특히 1990년대는 전성기였다. 노벨경제학상은 시카고학파가 휩쓸었다. 로널드 코즈(1991)를 비롯해 게리 베커(1992), 로버트 포겔(1993), 로버트 루카스(1995), 제임스 헤크먼(2000) 등이 연이어 노벨상을 받았다. 해리 마코위츠(1990)와 머턴 밀러(1990) 등 금융학자들도 수상자 대열에 올랐다. 1969년 시작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74명 가운데 12명이 시카고학파이며, 졸업생 등을 합치면 24명이나 된다고 한다. 프리드먼이 생전에 “노벨상을 받으려면 시카고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자랑했던 정도다.

시카고학파가 이렇듯 노벨상을 도맡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유로운 사고와 철저한 비판정신이라고 한다. 실제 시카고학파에서 매주 열리는 워크숍은 발표자를 학문적으로 난도질하는 학살의 현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카고학파를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케인스학파는 물론이고 같은 자유주의 서클인 오스트리아학파조차 이들을 비판한다. 이 학파의 거두였던 머레이 로스바르트 교수는 “이들이 진정한 시장경제 중시 학자들이라고 보기 어렵다”고까지 평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시카고학파가 붕괴했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하지만 이들은 올해에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세 명 가운데 2명을 배출했다. 바로 유진 파마(74)와 라스 피터 핸슨(61) 교수다. 피터 크루셀 노벨경제학상위원장이 “이들은 독창적 연구영역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구한 다른 리그의 인물”이라고 애써 관련성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영락없는 시카고학파다. 시카고학파가 부활할지 지켜볼 일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