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정말 피곤해서 하기 싫은 자리…국회의원을 이렇게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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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결산 좌담회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이 9회에 걸쳐 점검한 한국 국회 권력의 독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웬만한 선진국보다 더 큰 특권을 누리면서도 일은 상대적으로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좁은 사무실에서 밤샘 근무를 밥 먹듯 하는 스웨덴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국민을 위한 봉사 모델이라면 한국 국회의원들은 분명 군림하는 자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주 초 본지와 가진 시리즈 결산 좌담회에서 특권 내려놓기와 허술한 입법 과정 및 낮은 질, 표만 쫓는 포퓰리즘, 법 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행태, 민주주의 가치를 흔드는 정치 실종 등을 당장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이 가진 특권 상당 부분을 당장 내려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피곤한 자리’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입법 실명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신율 명지대 교수, 김용호 인하대 교수 등이 좌담회에 참석했다.
개인보좌관 폐지하고 입법실명제 도입 필요
국회일정 법으로 지정…어기면 불이익 줘야
중앙당 역할 줄이고 윤리위는 외부인사로
예산 들어가는 정책…美처럼 사전검토 의무화
▶취재팀이 스웨덴 정치를 현지에서 취재한 결과 의원 특권이 원내 유치원 정도라고 하더라. 한국은 국가 규모에 비해 특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신율 교수= 보좌관 문제부터 말해보자. 의원 보좌관 중 한 사람은 꼭 지역에 내려가 있다. 국민 세금으로 정치인 재선운동 하는 것이다. 특권의 전형적인 사례다. 운전기사는 제일 큰 역할이 의원 지방 내려갈 때 운전해 주는 것이다. 개인 보좌관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입법 보좌관을 확대해서 의원들이 필요할 때 같이 쓰면 된다. 김용호 교수= 아무 말이나 근거 없이 막 던져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도 특권이다. 불체포특권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금전적으로 수많은 특권을 줬는데도 생산적인 국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입법은 부실하다. 제 역할만 한다면 보좌진을 몇 명 두든 누가 뭐라 하겠나. 보좌진을 의원 개인이 아닌 상임위원회에 소속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만큼 일을 한다고 보나. 특권 문제에 대한 해법은.
신 교수= 제대로 입법에 집중하는 의원들을 정말 찾기 힘들다. 의원 298명 중 잘된 입법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 돈 받아 거의 지역구에 쓴다. 한 달에 1500만원 정도 쓴다고들 하더라. 특권, 스스로는 절대 내려놓지 않는다. 여론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닌, 정말 피곤해서 서로 하기 싫은 자리여야 한다. 그래야 사명감이 생긴다. 이상돈 교수= 정치 시스템 자체도 문제가 있다. 중앙당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체제로는 의원들이 자체적으로 입법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
신 교수= 법안 수로 의원들이 일하는 정도를 평가하는 분위기도 고쳐야 한다. 정부 청부발의, 옛날 법안 재탕 삼탕 이런 것들로 법안 수만 늘린다. 국회의원의 성실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
김 교수= 한국 국회는 짝수 달에만 열린다. 전체적으로 노는 분위기다. 다른 나라는 의결을 해야 휴회할 수 있다. 한국도 그런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입법 부실도 심각하다. 입법 실명제를 시행해야 한다. 어떤 법안이 나오면 이게 누구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질적 평가가 가능하다. 신 교수= 상시국회가 꼭 필요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정치 일정을 법으로 못 박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법적 불이익을 줘야 한다.
▶의원들의 막말과 ‘아니면 말고 식’ 폭로정치가 도를 넘고 있다.
김 교수=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활동을 공중파에서 생중계하는 아이디어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실한 대정부 질문 같은 것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일본에서도 1970년대까지 의회에서 주먹질이 잦았는데 NHK가 생중계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현재 중계하는 국회방송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교수= 국회의장이 제 역할을 못한다. 국회의장은 질서유지권 같은 막강한 권한이 있는데 최루탄 터뜨려도 기껏 한다는 게 고소를 하는 것이다. 윤리위원회도 문제다. 재판에서 유죄가 나와야 의원직을 상실하게 한다. ‘윤리’는 실정법보다 높은 기준이다. 법보다 늦게 판단해선 안 된다.
신 교수= 한국 윤리위는 전부 국회의원들로 채워져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어떻게 징계하겠나. 윤리위는 외부 인사로 꾸려야 한다. 또 여야가 제소하지 않더라도 여론이 문제 삼으면 자동으로 윤리위에 상정되게 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한 국회선진화법이 ‘국회 식물화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신 교수= 민주주의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제도는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타협을 하는 건 중요하다. 국회선진화법은 그런 원칙에는 부합한다. 물론 선진화법 때문에 국회 기능이 정지되는 건 문제다. 하지만 이건 18대 국회 막판에 여야가 합의로 만든 법이다. 벌써 수정론이 나오는 건 너무 조급한 것이다.
김 교수= 선진화법이 국회 내 폭력을 막은 것은 좋았다. 하지만 ‘5분의 3’ 룰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다. 교섭단체끼리 합의 못 하면 본회의도 못 여는 건 말이 안 된다.
이 교수= 이번 정기국회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선진화법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여론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처럼 언론이 미리 문제를 짚어주는 건 의미가 있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54일간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신 교수= 민주당 일부 세력은 여전히 과거의 틀 속에서 현재를 본다. 과거에 하던 대로 장외투쟁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장외투쟁을 하면 할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그걸 못 본다. 국민은 장외투쟁을 싫어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기 지지층만 보고 정치를 한다.
이 교수= 중앙당 시스템을 없애는 문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공천과 당권이 걸려 있으니 의원들이 당의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이다. 의원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데 전혀 역할을 못 한다. 중앙당의 역할을 확 줄여야 한다.
신 교수=그간 몇몇 정당이 시행했던 중앙당 슬림화는 ‘눈 가리고 아웅’으로 끝났다. 체제를 바꾸려면 지역구 수를 줄여 중앙당의 공천권한을 약화시키고 비례대표 수를 크게 늘려야 한다.
이 교수=비례대표야말로 당에서 뽑는 것 아닌가. 나는 오히려 비례대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대신 인구비례에 따라 지역구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의 포퓰리즘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많다.
신 교수= 한국은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복지 욕구도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요구가 있으면 정치권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포퓰리즘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만 국민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유럽과 같은 길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일단은 들어주되 국민들이 생각하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 기초연금 같은 경우도 청와대가 나서 두 번이나 사과하니 사태가 더 커지지 않았다.
김 교수=지나친 복지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예산이 들어가는 정책은 전부 사전에 예산 검토를 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런 제도가 있다.
이 교수=행정부가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지나친 포퓰리즘 법안은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한국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없나.
김 교수=의원들이 당직을 못 갖게 하자. 그게 첫걸음이라고 본다. 그러면 장외투쟁은 사라진다. 공천에 매달릴 일이 없다.
신 교수=특권을 없애자. 개인 보좌관, 기사 없애고 각종 특권을 상당 부분 내려놓게 하자. 지하철 타고 다녀야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본다. 국회의원을 피곤하게 만들어야 한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게 해야 한다. 유권자들 의식 개혁도 중요하다. 유권자들이 자기 이익 중심으로 투표하면 정치가 바뀌기 쉽지 않다. 정당 시스템도 바꾸자. 사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15대 이후 선거 때 의원 물갈이율이 50%가 넘는다. 세계 최고다. 그런데도 정치는 안 바뀐다. 이 교수=국회 의원회관 새로 지은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특권을 줄이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특권의 상징 같은 것을 오히려 늘리고 있으니…. 차라리 그 건물을 국회 도서관으로 쓰자. 국회 내에서 본회의장과 의원회관 사이가 걸어서 2분 거리인데도 차 타고 다니는 게 한국 의원들이다. 정말 변해야 한다.
특별취재팀 손성태 차장, 김재후 이태훈 기자(이상 정치부), 주용석 차장대우, 런던·스톡홀름=김주완
기자(이상 경제부), 이태명 기자(산업부), 장진모 워싱턴 ·안재석도쿄특파원, 남윤선기자(이상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