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열정의 텔아비브를 가다] 시내 지도에 스타트업 주소 별도 표시…하루 한개꼴 창업 행렬

(1) 세계 최고의 창업도시

불 뿜는 모험정신
대기업서 뻔한 일보다 하고싶은 일 하겠다

구글 '드림팀'도 출동
기술·영업·마케팅…사업 전방위 멘토링
이스라엘 아리엘 공과대학에서 메커트로닉스(기계전자공학)를 전공한 대학생 오퍼 바쉬는 ‘동작인식 로봇’이라는 아이템으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학교 연구실에서 직접 개발한 로봇 팔을 움직여보고 있다. 임원기 기자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이 놀라는 점 중 하나는 호텔이나 관광지에서 공짜로 구할 수 있는 도시 지도에 신생 벤처(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의 사업 진행을 도와주는 회사나 기관), 투자회사 등이 각각 다른 색깔로 표시됐다는 점이다.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이 있기에 이렇게 지도를 만든 것일까. 신우용 KOTRA 이스라엘 무역관장은 “많은 이스라엘 젊은이의 동선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곳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청년들의 역동성이 이스라엘 경제의 역동적인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츠파&로시가돌
구글이스라엘의 ‘런치패드’ 프로그램에 참여한 벤처기업인들이 텔아비브의 구글캠퍼스 26층에서 개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아리엘 공과대학에서 메커트로닉스(기계전자공학)를 전공한 대학생 오퍼 바쉬는 현재 대학 수업의 마지막 과제로 ‘동작인식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진학 전 군복무 시절부터 로봇을 연구해온 그는 10년 내에 ‘로봇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사람의 동작을 인식하는 로봇은 사람이 하기 힘든 위험한 일을 대신하거나 실수가 있으면 안 되는 정교한 일을 행하는데 즉시 활용될 수 있다”며 “대기업에 입사해 뻔한 일을 하는 것보다 좀 힘들더라도 내가 믿는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쉬와 같은 학생들은 요즘 하루에 한 개 꼴로 텔아비브에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있다. 흔히 이스라엘을 창업국가로 만든 원동력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후츠파(Chuzpah)와 로시가돌(Roshgadol)을 보여주는 사례다. 후츠파는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을 뜻하고 ‘큰 머리’라는 뜻의 로시가돌은 오늘날 ‘책임지는 태도’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펀드 회장은 이 둘을 합해 “굴하지 않고 도전하되 자신의 결정에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처음부터 글로벌 지향

창업에 필요한 두 가지는 돈과 사람이다. 스타트업은 그중에서도 사람을 최고로 친다. 이종구 러브투트레일(Love2Trail) 대표(48)는 텔아비브의 유일한 한인 벤처사업가다. 삼성전자 이스라엘 현지법인 출신인 그는 2011년 이스라엘에서 창업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스라엘엔 정말 천재적인 엔지니어가 많습니다. 그런 인재들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러브투트레일은 누구나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 한류 콘텐츠의 제작스토리, 주인공 및 배우, 가수 등에 대한 이야기를 앱 형태로 제작할 수 있도록 한 것. 이 대표는 “경쟁력 있는 한류 콘텐츠와 이스라엘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결합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벤처기업가들은 이 대표처럼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시장을 지향한다. 정부도 글로벌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비 하손 경제부 수석과학관은 “대기업 입사 대신 창업을 하고, 시작부터 글로벌시장 진출을 노리는 이스라엘의 창업 문화는 확실히 독특한 데가 있다”며 “하지만 이것은 좁은 내수시장과 오랜 세월 국가 없이 세계를 누볐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와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구글도 특별한 대우 텔아비브 시내 북동쪽 하이파 지역에 있는 구글이스라엘은 본사인 미국에도 없는 프로그램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런치패드(launchpad)’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에 대해 기술 개발 노하우뿐 아니라 디자인, 마케팅, 영업 등 사업에 필요한 전방위적 멘토링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벌써 85개의 스타트업이 세상에 나왔다.

구글이스라엘 건물 26층에서 만난 벤처기업 스포팀(Spoteam)의 에레즈 엘리아드 대표는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대표적인 케이스. 스포팀은 개인 맞춤형 동영상 추천 서비스를 만든 회사다. 그는 2년 전 창업팀을 꾸려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8월 구글의 런치패드에 지원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엘리아드 대표는 “온라인 마케팅이나 디자인 등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구글 직원들의 지원 덕에 사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제 투자 유치를 위해 다음달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아미르 셰밧 구글 개발매니저는 “텔아비브는 스타트업 창업을 도와줄 실력 있는 멘토진, 풍부한 창업자금, 확실한 정부 지원 등 창업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꺼이 실패를 감수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모험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텔아비브=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