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채한도 협상 극적 타결] 美 국가부도 면했지만…3~4개월 후 유사사태 재발 불보듯

전문가 "재정위기 타임존 1~2월로 이동"
美경제 240억弗 손실…성장률 0.6% 까먹어

연방정부 정상화…40만 해고 공무원 복귀
미국이 16일(현지시간)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간신히 넘겼지만 시장참가자들의 불안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날 뉴욕 증시가 급등하고 이튿날 아시아 증시도 올랐지만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는 일종의 ‘안도랠리’였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치권이 막판에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지만 연방정부의 셧다운(일부 폐쇄)과 디폴트 위기를 불러온 핵심 쟁점은 건드리지 않고 시한만 몇 달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중간선거(11월)까지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셧다운·디폴트 위기 해소

이날 미 의회 상·하원을 통과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의 골자는 디폴트 위기와 셧다운을 푸는 것이다. 우선 내년 2월7일까지 연방정부의 법정 부채한도 적용을 유예키로 했다. 이로써 재무부는 부채한도(현재 16조7000억달러)에 구애받지 않고 국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의회 관계자는 “재무부가 ‘비상조치’를 가동하면 그 이후에도 3~4주간 국채를 더 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폴트 데드라인이 내년 3월 초로 연기된 셈이다.

또 2014회계연도(2013년 10월~2014년 9월) 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내년 1월15일까지 적용되는 잠정예산안(법)을 통과시켰다. 이달 초 일시 해고된 40만여명의 공무원은 17일부터 복귀한다. 폐쇄됐던 국립공원이 문을 여는 등 연방정부 기능도 정상화된다. 민주·공화 양당은 이와 함께 오는 12월13일까지 세제개혁과 복지예산 조정 등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본예산안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본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해 또다시 잠정예산안을 편성하면 내년 1월 ‘2차 예산 자동삭감(시퀘스터)’ 조치가 발동된다.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던 건강보험개혁법(일명 오바마케어)은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다만 연방정부 보조금 지급 대상의 소득자격 기준을 엄격히 정하도록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바마케어 폐기와 예산 삭감을 요구하며 대치하던 공화당이 싸움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정치권발 위기 ‘휴화산’ 정치권이 국가 디폴트를 볼모로 두고 벼랑 끝 대치를 벌였지만 승자 없는 게임이었다. 공화당이 ‘완패’했다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리더십에도 큰 흠집이 났다. 막판 협상을 주도한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정치권이) 정당한 이유 없이 국가에 상처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경제 충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셧다운의 경제적 손실이 240억달러에 이르고 4분기 경제성장률이 0.6%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베스 안 보비노 S&P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여름 부채한도 협상 때 소비심리가 3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3분기 성장률이 1.4%에 그쳤다”며 “셧다운 와중에 벌어진 이번 디폴트 위기의 충격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위기가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WSJ는 “이번 싸움의 상처가 워싱턴의 정치 지형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이번 합의안은 일을 뒤로 미룬 것일 뿐”(짐 브리든스타인 하원의원)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세금과 지출을 둘러싼 공방전을 벌이며 또다시 셧다운과 디폴트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12월 중순 재정적자 감축안을 시작으로 내년 1월 중순 예산안 협상, 2월 초 부채한도 협상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한폭탄이 예고돼 있는 셈이다. 폴 에덜스타인 IHS글로벌인사이트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오늘 총탄을 피했다. 그러나 안도는 잠시뿐, 내년 1월에 또다시 결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