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다큐영화제] DMZ에 선 '만신', 60년째 갈라선 민족과 땅의 화해를 빌다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식 현지 취재

60년째 갈라진 '민족-땅' 화해를 기원하는 살풀이, 개막작 '만신' 박수갈채
사진= 경기도 파주 민간인통제구역 인근을 지나는 임진강 지류와 들판의 풍광. 사진=김민성 기자
무례하지만 비무장지대(DMZ)의 외모는 그 내면보다 항상 앙상해 보인다. 시한부 인생마냥 한반도 유사시 얼마든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지금 존재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사각지대다. 건물과 사람이 들어차지 않은 빈 땅과 무성한 수목들은 자연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무심해보인다.

이 땅 위 아래로 갈라진 사람들은 역사와 민족에 상처받았던지라 자신과 가족만도 보듬기 벅찼다. 민족의 몸에 밖힌 상처와 총알보다 더 많은 파편을 받아낸 이 공간을 달래줄 여유는 그래서 전쟁을 겪은 사람이나 폐허 위에서 가난을 벗기 위해 몸부림친 후손에게는 사치였는지 모른다. 이 땅에 발을 디디는 모든 이들이 음산한 불안감을 느끼는 건 그래서 필연이다. 무심한 사람들을 향해 상처받은 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금단의 결계를 치고 은둔하는 일 뿐이었으리라. 다시는 안볼 사이처럼 서로에 분노를 토해내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들 관심 밖에서 정전 이후 60년동안 방치된 이 공간도 남북 민족과 좀처럼 화해할 마음이 없어보인다.
사진=영화 '만신' 스틸컷.
17일 밤 경기도 파주 민간인통제선 내 DMZ인 '캠프 그리브스'에서 막을 연 제5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위원장 김문수·집행위원장 조재현) 개막작으로 '만신(Ten Thousans Spirits·감독 박찬경)'이 선정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만신은 무당 중에서도 '나라 무당'이다. 구천을 떠도는 원한들의 극한 고통까지 받아낸다는 만신만이 이 버려진 사각지대를 위무하고, 갈라선 민족과 땅을 다시 화해시킬 수 있다는 반성과 현실 인식이었다.
사진= 영화 '만신'의 주인공 만신 김금화 선생. 붉은 한복을 차려입고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사진=김민성 기자
'만신'은 실존인물인 만신 김금화(82) 선생의 '신들린' 생애를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혼합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지정보유자인 김 선생은 1931년, 지금은 북한 땅인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또래들은 못보는 '헛것'을 보는 '신병(神病)'을 앓았다. 세상 물정 모를 열세살이 되던 일제 강점기, 조선인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모진 시댁의 핍박에 못이겨 도망쳤다.

김 선생은 결국 몸에 든 신을 이기지 못하고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 이후 6.25 전쟁, 군부독재, 광주민주항쟁,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천안함 침몰 등 가장 아픈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발로 찾아다녔다. 억울해 눈도 못감는 원혼의 넑을 달래기 위해 눈물로, 정성으로, 신명으로 살풀이했다. 김 선생은 압축적 근대화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 전근대·미신적인 모든 것을 상징하는 무당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탄압받았다. 그러나 김 선생이 숙명처럼 무당의 삶을 놓지 못한 이유는 무당만이라도 죽은 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치유해줘야한다는 일종의 산 자의 사명감이었다.

김 선생이 시대의 아픔과 원혼이 맺힌 곳 어디든 찾아가 산 자와 죽은 자의 상처를 치유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한 민속학자는 "칼 위에서 작두를 타야만 존재가치가 비로서 서는게 무당이다. 신도 인간도 아닌 외로운 중간자인 무당만이 귀신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를 치유해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개막작 '만신'은 60년째 남북 대치로 한(恨) 많은 한민족을 위한 살풀이이자, 한반도 허리를 자른 철조망 속에 유배된 비무장지대를 위한 살풀이였다. 110분 상영 끝난 뒤 관람자들이 끊임없는 박수를 보낸 이유도 '만신'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함의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붉은 한복을 차려입고 영화제에 참석한 김 선생은 그저 "이 영화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우리 전통 굿 문화가 다시 인식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감을 남겼다.
사진설명=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제 귀빈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민통선 내 옛 미군 기지인 캠프 그리브스에는 제5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을 축하하는 귀빈 및 영화관계자, 관람객 1000여명이 몰렸다.

영화제 개막을 선언한 조직위원장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 집행위원장인 배우 조재현,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 임권택 감독, 김기덕 감독, 손숙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이사장, 배우 안성기·김정태·류현경·박상민·김규리·김재원·조윤희·전노민 등이 함께했다. 전 MBC사장인 엄기영 경기문화재단 대표 및 이번 영화제 공동 주최를 맡은 고양시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조재현 집행위원장은 "이 영화제를 믿어주는 분들이 간섭하지 않아 더욱 건강하게 자라났다"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의 창작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성장시키는 영화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제5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출품작이 늘면서 아시아 최대 수준의 다큐 영화제로 자리잡고 있다. '평화·생명·소통'을 주제로 오는 23일까지 캠프 그리브스와 고양시 일대 극장, 호수공원 등지에서 38개국에서 출품한 119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폐막작은 경쟁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사진= 제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회를 맡은 배우 박상민(왼쪽) 및 김규리씨. 사진=김민성 기자
<캠프 그리브스> 글·사진=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트위터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