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외자유입…'위장된 축복' 대 '진정한 축복' 논쟁

유입 외자 '대기성 성격'도 강해
성장률 등 기초 여건 개선 시급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외국인 자금 유입이 36일째 지속되고 있다. 최장 기록이다. 그 규모도 12조4000억원을 넘어섰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2011년 8월 이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2050’ 상한선을 뚫었다. 원·달러 환율도 달러당 1060원 수준까지 하락(원화가치 절상)했다.

갑작스러운 외국인 자금 유입의 근거로 한국 증시의 저평가 요인을 꼽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10배 이내로,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이 요인은 금융위기 이후 주가 예측이나 투자 권유 차원에서 계속 거론돼온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는 투자 대상 국가나 종목을 선정할 때 PER에 의한 판단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 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 이외의 다른 요인이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정책이나 경기(혹은 중심권), 투자자 성향 면에서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대전환)’기다. 정책 면에서 출구전략 추진을 앞두고 있다. 경기 면에서는 신흥국보다 선진국이 밝게 전망되고, 투자자 성향도 안전자산보다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과 같은 대전환기에 글로벌 자금흐름에서 먼저 고려하는 기준은 ‘피난처(shelter)’ 기능이다. 어느 한쪽으로 확실하게 방향이 잡힐 때까지 자금을 일시적으로 넣어두자는 목적이다. ‘S’자형 투자이론으로 볼 때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 간 중간 단계다. 투자국 지위로 볼 때 FTSE지수로는 선진국, MSCI지수로는 신흥국이다. 준선진국인 셈이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 대립 구조’로 특징짓는 21세기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 질서에서 두 권역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한국 같은 국가들은 대전환기에 대기성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최적국으로 분류된다. 신흥국으로서 양적완화 추진 과정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진국으로서 출구전략 추진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캐시 플로(cash flow·현금 흐름)’이다. 크게 두 가지, 즉 재정과 외환 건전성이다. 국제기준(중앙과 지방정부의 현시적 채무)으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4% 내외로 재정 건전국으로 분류된다. 신흥국의 위험 수준인 7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외자는 재정수지보다 더 건전하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스톡 면에서 직접적으로 갖고 있는 제1선 자금과 간접적으로 확보한 제2선 자금을 합하면 4000억달러가 넘는다. 최광의 캡티윤 개념(경상수입 3개월치+단기 외채+포트폴리오 자금+준포트폴리오 자금)으로 추정된 적정 외환보유액도 3700억달러를 넘는다. 플로 면에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6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펀더멘털 측면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이상 ‘디플레 갭’이 발생할 만큼 완전치 못하다. 내년에도 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은 건전한 재정수지도 갈수록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어 언제든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외화 건전성도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의존도가 높아 질적으로는 건전하지 못하다.

이 때문에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정책이나 경기, 투자자 성향이 어느 한 방향으로 잡힐 때 지금처럼 한국에 외국인 자금이 계속해서 들어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출구전략 추진 후 신흥국이 지금의 성장통(痛)을 개선하지 못하면 선진국이 더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 성향도 유동성보다 경기와 같은 펀더멘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으로 대전환기에 한국과 같은 중간자 위치에 있는 국가로 사람과 돈이 몰려든다. 일종의 ‘샌드위치 상의 대기 혹은 도피성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 뚜렷하게 방향이 잡히면 그때는 사람과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하루빨리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준선진국 지위에 맞게 끌어올려야 한다. 재정수지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외화도 특정기업에 대한 편중도를 줄여 질적으로 건전하게 개선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따르면 지금의 외자 유입이 ‘진정한 축복’이 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후에 더 큰 화(禍)를 가져오는 ‘위장된 축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예측기관과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은 예산안 처리 지연에 따른 경기 둔화로 출구전략 추진이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현 국면이 지속되면서 코스피지수가 더 올라가고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하는 ‘오버 슈팅’ 국면이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펀더멘털이 채 개선되기 전에 출구전략이 추진된다면 정반대 상황이 닥칠 수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에 동시에 대비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