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말단사원 결혼식에 자신의 에쿠스 보내…"직원은 가족" 포용 리더십이 회사 바꿨다

CEO 오피스 - 家長같은 보스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경비·청소아줌마들과도 식사…협력사 직원들도 똑같이
임직원들 애사심 똘똘 뭉쳐…경질유 점유율 3년새 5%↑
취임후 성장세 뚜렷…윤활유 등 사업다각화로 2016년 영업익 1조 목표
현대오일뱅크 구매팀에서 근무하는 허재호 대리는 지난달 결혼식 때 어깨가 으쓱했다. 꽃단장을 마치고 미용실을 나온 신부는 최고급 에쿠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우리 사장님께서 차를 보내셨다”는 허 대리의 말에 신부는 다시 놀랐다. 허 대리 부모님은 “대리가 사장님 차를 탔으니 앞으로 사장이 되겠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일하라”며 아들을 격려했다.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2010년 취임한 이후 생긴 문화다. 권 사장은 직원의 경조사 때 요청이 있으면 자신의 차를 흔쾌히 내준다. 지금까지 150명 넘는 임직원이 권 사장의 차를 이용했다. 30여년 전 새내기 직장인 시절 신혼여행을 떠나는 동료가 차량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사장님 차를 웨딩카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그는 사장이 되자 이를 실천에 옮겼다.
권 사장의 웃는 모습을 보면 하회탈춤에서 볼 수 있는 양반탈을 떠올리게 된다. 초승달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웃는 얼굴은 푸근한 인상을 준다. 권 사장을 만난 직원들은 아버지 같은 가장(家長)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느낀다고 말한다. 권 사장은 올해부터 아기를 낳은 여직원은 법정 출산휴가 외에 추가 휴일을 쓸 수 있도록 사규를 바꾸기도 했다.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배려하는 권 사장의 리더십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것이다. 그의 고향은 안동 권씨 가문이 500년 가까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경기 판교 청계산 자락의 권씨 집성촌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에서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중풍으로 고생하신 아버지를 모시며 장남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 지난해 어머니가 101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엔 주위에 알리지 않고 직계가족들만 모여 조용히 상을 치렀다. 일요일 발인을 마치고 월요일에 출근해서야 가까운 지인들에게 모친상을 알렸다. 신입사원들의 가족 초청 행사를 마련한 이도 권 사장이다. 신입사원 부모님들을 초청해 1박2일 동안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첫날에는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도 울산에 내려가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행사 때마다 권 사장은 신입사원 부모들에게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야 진정한 가족이 된다고 생각해 초청했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신입사원들이 첫 월급을 봉투에 담아 부모님께 큰절과 함께 드리면 행사장은 이산가족 상봉장처럼 눈물바다로 변하기 일쑤다. 직원 가족들과 회사가 일체감을 느끼는 이 프로그램은 현대오일뱅크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권 사장은 매주 하루 충남 대산공장으로 출근한다. 오전 5시 서울에서 출발해 공장에 도착하면 현장직원들과 똑같이 구내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일과를 시작한다. 2010년 이후 대산공장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올해 4월 준공한 한마음관이 대표적이다. 협력사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한마음관은 전용식당과 샤워시설, 라커룸, 운동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권 사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협력사 직원들은 컨테이너를 개조한 가건물에서 일했다. 공장을 둘러보다 가건물을 본 권 사장은 <“협력업체 직원들도 우리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지내도록 해서 미안하다”며 현장에서 사과하고 전용공간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근무복과 안전장비 등도 현대오일뱅크 직원들과 같은 제품으로 지급했다. 연말마다 회사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과 경비직원, 공장 보안직원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것도 권 사장이 빠트리지 않는 행사다. > → 권사장의 상생철학 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은 월급의 1%를 기부한다. 권 사장이 주도해 설립한 ‘현대오일뱅크 1%나눔재단’은 직원들의 기부금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권 사장은 스포츠계에도 나눔 문화를 전파했다. 올해 2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에 추대된 그는 연맹 직원과 각 축구단 선수 및 직원, 심판 등과 함께 급여의 1%를 기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권 사장의 리더십은 임직원들의 애사심을 키워 경영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외국계 자본이 참여한 이후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혼란을 겪었던 현대오일뱅크는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으로 편입되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산공장의 한 직원은 “권 사장 취임 이후 직원들이 사무실 벽에 사훈을 다시 걸고 아침에 사가를 부르는 등 마음가짐과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1%포인트를 올리기가 어렵다는 경질유 내수시장 점유율을 3년 새 18%에서 23%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발전적인 기업문화를 조성한 덕분이었다. 영업임원들이 지방 주유소를 돌며 업주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현대오일뱅크로 간판을 바꿔 단 사례도 많다. 요즘 권 사장은 석유정제 이외로 사업을 확대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뒤졌던 석유화학과 윤활유 사업이 핵심이다. 상반기 일본 코스모와 합작으로 방향족(BTX) 설비를 증설했고 지난 7월엔 롯데케미칼과 1조원대 규모의 혼합자일렌 합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양해각서를 맺었다. 울산신항에 짓고 있는 유류저장설비도 11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정유업계는 현대오일뱅크의 약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쟁사의 한 임원은 “솔직히 몇 년 전만 해도 현대오일뱅크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권 사장 취임 이후 성장세가 뚜렷해 요즘은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6년 영업이익 1조원 클럽 가입을 목표로 세운 권 사장의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정유업계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