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커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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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 아닌 집에선 '믹스커피'만누군가 외국인에게 한국의 이색적인 풍경에 대해 물었더니 길거리에 넘쳐나는 아웃도어 패션과 커피전문점을 꼽았다고 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변에 커피전문점이 너무나 많다. 예전에는 중심 상권의 대로변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아파트 단지 앞이나 좁은 골목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한국의 커피전문점 수는 무려 1만2000여개, 연간 매출은 2조5000억원에 달한다.
크게 늘어난 시장만큼 문화도 바뀌어야
이은정 < 한국맥널티 대표·여성벤처기업협회장 eunjlee@mcnulty.co.kr >
왜 이렇게 커피전문점 시장이 커졌을까? 우리 국민이 커피를 유난히 좋아해서라고 한다면 분명 오해다. 한국의 성인 평균 커피소비량은 이웃 일본인의 절반도 안 된다. 일본인들은 한 주 동안 가정에서 6.5잔의 커피를 마시는 반면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양은 0.2잔에 불과하다. 우리는 가정보다 커피전문점에서의 소비율이 높다. 대신 집에서는 저렴한 인스턴트커피를 즐긴다. 대형마트 단일 품목 중 매출 1위가 커피믹스다. 우리 커피 소비의 안과 밖이 이렇게 다르다. 공급 차원에서 이유를 찾아보자. 커피전문점 시장은 취업난, 조기 퇴직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중산층 가계에서 가장 손쉽게 하는 창업이 커피숍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총아라 일컫는 프랜차이즈를 만나면 투자금 이외의 부담은 크지 않다. 청년들의 취업난은 많은 바리스타를 양성시킨다. 한 해 1만명 이상의 바리스타가 배출되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수요 측면은 어떤가. 우리나라 커피전문점은 ‘커피를 파는 곳’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라는 개념이 혼재돼 있다.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은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는 의미로 통용된다. 강남 학원가 주변 커피숍은 아카데미맘들이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다. 대학가 카페는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국내 커피산업의 외형에 걸맞게 커피문화도 진일보할 필요가 있다. 선진화된다는 것은 곧 선택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가정에서 원두커피를 즐기는 문화, 다양한 형태의 커피제품이 소비되는 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 시장은 수요가 창출한다. 결국 우리의 커피문화가 선진화되려면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져야 한다.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커피가 있고, 이를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시장이 무르익는다면 우리의 일상도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더구나 커피가 주는 여유와 낭만을 생각하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 않을까.
이은정 < 한국맥널티 대표·여성벤처기업협회장 eunjlee@mcnult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