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7~10등급 풀리지 않는 '족쇄'

채무조정 받아 등급 올랐지만 꼬리표 남아…"대출 안되는데요"
김영광 씨(50)는 작년 초 은행 등 금융회사 3곳에서 약 3000만원을 빌렸다가 이자를 연체해 채무불이행자가 됐다. 다행히 지난 4월 국민행복기금에 채무조정을 신청해 1200만원을 탕감받았다. 은행연합회에 등록돼 있던 연체 정보도 사라졌고, 8등급으로 떨어졌던 신용등급도 6등급으로 회복됐다.

김씨는 최근 급전이 필요해 은행을 찾았다. 6등급이면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은행은 “추가 대출이 어렵다”며 퇴짜를 놓았다. 신용정보 조회 결과 ‘국민행복기금 수혜자’라는 꼬리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빚 탕감…저신용자 22만명 감소

국민행복기금 등 정부의 각종 빚 탕감 정책 덕분에 7~10등급에 해당하는 김씨 같은 저신용자들의 신용등급이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올라도 은행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해당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23일 개인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국민행복기금의 채무조정이 시작된 이후 은행 거래가 불가능한 7~10등급에 해당하는 사람이 크게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10등급 인원 수는 4월 말 624만명에서 8월 말 602만명으로 4개월 새 22만명 줄었다. 이들 대부분이 6등급 이상으로 상향 조정됐다는 게 KCB의 설명이다. 6등급 인원 수는 같은 기간 513만명에서 521만명으로 8만명 늘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불경기가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7~10등급의 빚 상환 능력이 단기간에 향상돼 신용등급이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CB 관계자는 “채무조정을 받으면 과거 연체 기록이 사라지고, 남은 부채도 줄어 신용등급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채무조정제도인 법원의 개인회생과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워크아웃도 저신용자의 신용등급 상승에 한몫했다. 개인회생 신청자는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6만9586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상반기 3만769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0명 늘었다. ○남은 빚 다갚아야 대출 가능

각종 채무조정제도로 빚을 탕감받고, 신용등급이 올라갔다고 해서 은행에서 곧바로 대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용조회를 하면 ‘국민행복기금 수혜자’ ‘개인회생 대상자’ 등의 표시가 나오기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국민행복기금 수혜자라는 꼬리표가 있으면 아무리 신용등급이 올랐다고 해도 추가 대출해주기 어렵다”며 “연체경력이 있는데다 아직 부채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빚을 못 갚아 탕감받은 사람에게 추가 대출해 주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B은행 관계자는 “남은 빚을 모두 갚기 전까지는 채무조정 내역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추가 대출을 받으려면 탕감받고 남은 빚을 이른 시일 내에 갚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