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조 쥐락펴락…삼성 출신 CIO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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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보험사 자산운용 '슈퍼 파워'2010년 금호생명을 인수해 출범한 KDB생명은 이듬해 새 운용책임자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금호생명에서 넘겨받은 부실을 정리하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축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여러 전문가를 후보로 검토하던 KDB생명은 최종적으로 삼성생명 부장이던 안시형 상무를 선택했다. 채권 주식 등 특정 분야에서만 전문성이 있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안 상무가 사모펀드(PEF), 해외유가증권까지 두루 섭렵한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IBK 이수형·동부화재 정경수 부사장 등 활약
체계적 이론 교육·대규모 자산운용 경험 장점
삼성생명 출신들이 총 58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보험업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생명 출신이 최고운용책임자(CIO)를 맡고 있는 곳은 주요 보험사만 꼽아봐도 6곳에 달한다. 이들은 국내 자산뿐만 아니라 해외 부동산 투자 등에서도 정보를 공유하며 금융시장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가다. IBK연금보험에서 자산운용 부문을 총괄하는 이수형 부사장(53)이 대표적이다. 16년간 삼성생명에서 근무한 이 부사장은 동부생명을 거쳐 2010년 IBK연금보험에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IBK연금보험이 출범 1년 만인 2011년부터 흑자로 돌아선 데는 그의 기여가 컸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부생명 최현기 부사장(55)도 삼성생명에서 1982년부터 27년간 일했다. 동부생명은 취약한 운용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가로 이름을 떨친 최 부사장을 2011년 영입했다.
지난 6월 동부화재 자산운용부문장에 선임된 정경수 부사장도 1981년 입사해 줄곧 자산운용 업무를 해온 삼성 출신이다. 새마을금고와 공무원연금공단 등에서 주식·채권 운용에 잔뼈가 굵었다. 정 부사장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허장 동부화재 투자사업본부 상무도 삼성생명에서 특별계정 운용을 맡았었다. 또 해외 부동산 매입 등으로 한화생명의 투자관리팀을 이끄는 허석영 상무는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에서 심사 업무 등을 담당했다. 알리안츠생명의 자산운용 총괄 박대양 상무, 동양생명의 주영석 이사도 삼성생명 출신이다.
대부분 50대 중반인 이들은 삼성생명 출신 2세대 CIO로 분류된다. 1세대는 1998년 계열사 삼성자산운용이 설립되면서 대거 옮겨 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금도 자산운용회사들에 다수 포진해 있다.
삼성생명 출신이 각광받는 이유로 한 대형 보험사 인사 담당 임원은 “체계적으로 이론 교육을 받아 기초 실력이 탄탄하다”는 점을 꼽았다. 15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산을 운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도 장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보험사 운용역에 비해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경우가 많아 종합적인 시야가 필요한 중소형 보험사의 CIO로 적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금리 상황이 고착되면서 보험사들이 운용수익률 개선에 매달리고 있어 삼성생명 출신의 인기는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약진은 역설적으로 삼성생명 내부의 경직된 운용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삼성생명 출신 한 보험사 임원은 “조직문화상 이중 삼중의 위험관리 체계가 갖춰진 데다 각종 제약이 많아 자산운용의 폭이 제한되고 투자가 이뤄지기까지 의사결정 시간이 긴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좀 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자산운용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운용 규모가 작은 중소형사로 옮기는 것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한 보험사 사장은 “최근 삼성생명에선 자체 운용 능력을 더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인력 이탈에 예민한 모습”이라며 “이직한 사람들을 다시 데려오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