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통신요금 원가 공개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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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장관은 통신요금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대해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현 미래부)가 제기한 항소를 미래부가 취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통신업체들의 통신요금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유성엽 민주당 의원 등의 질타가 이어지자 ‘원가 공개 불가’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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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맞짱토론에선 통신요금 원가 공개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과 이태희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의 의견을 들어봤다.찬성 가계 통신비 부담 너무 커…국민의 알 권리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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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참여연대는 현재 이동통신요금의 획기적인 인하와 통신의 공공성 회복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고, 이동통신 3사의 담합과 폭리 의혹에 대해서도 공정위에 신고를 했다. 또 이동통신요금 원가 및 이동통신사의 약관 신고·인가신청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평가 자료와 요금 산정 근거자료, 그리고 요금인하와 관련해 방통위의 전체회의에 보고된 자료 등의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그전에 방통위는 역시나 이동통신 3사를 비호하며 정보공개를 거부한 바 있다.
한국 통신비 OECD중 2위
투명하고 싼 요금…공익 우선
그렇게 1심 법원이 공개를 명령한 자료를 살펴보면 ‘요금 원가 산정을 위해 필요한 사업비용 및 투자보수 산정 자료’, ‘이동통신 3사가 방통위에 제출한 요금 산정 근거 자료’, ‘이용 약관의 신고·인가와 관련된 적정성 심의 평가 자료’ 등으로 국민이 그동안 폭리와 담합 의혹을 제기했던 이동통신요금 원가 관련 중요한 정보들이 포함돼 있다.
현재 위 소송의 항소심에서 이동통신과 관련된 방통위의 업무를 이관받은 미래창조과학부와 이동통신 3사가 원가관련 정보 및 이동통신사의 약관 신고, 인가신청에 대한 심의평가 자료와 요금산정 근거자료 등에 대해 공개 거부를 주장하는 근거는, 위 정보들은 이동통신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므로 이를 공개하면 이동통신사의 영업에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서비스는 다른 재화와 달리 전기통신사업법에서 통신사업자에게 공평하고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의무를 부과해 공공서비스로서의 성격을 가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통신서비스 중 특히 이동통신서비스는 현재 국민생활의 필수재로서 공공서비스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따라서 국민의 알권리와 소비자주권의 원칙에 입각한 공익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이동통신사업자는 그 영업의 자유에 대한 일정한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이동통신서비스는 공공재
영업비밀 일부 공개할 수도
따라서 이동통신서비스의 원가 관련 자료에 영업비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동통신서비스의 공공성으로 인해 그 요금의 원가 공개로 얻을 수 있는 투명하고 공공적인, 그리고 저렴한 이동통신요금 책정이라는 공익 달성을 위해서는 이동통신사의 영업비밀 보호는 일정하게 제한될 수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원가 관련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 공개를 거절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동통신 사업은 대규모 장치 사업으로 초기 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그 이후로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특성이 있다.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진다면 사업 경과에 따라 요금 인하의 유인이 크므로 요금이 지속적으로 인하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이동통신사는 정반대로, 새로운 서비스 출시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해 왔다.
최근 OECD에서도 한국의 통신비 지수(통신비 부담)가 회원국 중에서 2위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 국민의 통신비 고통과 부담이 국제적으로도 확인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미래부는 자신들이 가진 모든 권한을 동원해 더 많이, 더 빨리 이동통신요금의 대폭 인하에 나서야 할 것이고, 국민이 꼭 알아야 하는 자료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공개에 나서야 한다.
반대 비싸다고 원가공개 안될 말…기업의 투자·혁신 막을 것
통신요금 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측이 제시하는 주요 논리는 통신요금이 비싸고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지난 6월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7개 도시의 이동통신 요금 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요금이 가장 싼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표한 34개국 비교에서는 싼 순서 기준으로 중상위권이었다.
원가공개는 '전가의 보도'?
통신은 공기업서비스 아냐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비싸다고 인식할 때마다 원가를 공개해야 하는가다. 통신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나 현대자동차의 차량 가격도 공개해야 한다. 참고로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13%, 현대차가 10%였다. 네이버의 영업이익률은 45%에 달했다.
통신서비스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와 비교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공공재이므로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논리다. 통신서비스가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도 전력 가스 수도처럼 공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민간기업이 경쟁을 통해 제공하도록 정책을 운영해왔다. 그렇다면 마땅히 해당 사업자들이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경쟁 환경 조성’이란 표현엔 기업에 원가 정보 공개를 요구해선 안 된다는 전제도 포함돼 있다. 정부가 경쟁 환경 조성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공개를 전제로 사업자에 원가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것이 현재 정책이다. 만약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사업자의 원가 정보를 공개할 것이 아니라 사업자들을 합병해 전력업체 가스업체와 같이 공기업화하는 것이 맞다.
정부가 통신을 전력이나 가스처럼 인식하고 민간기업을 공기업과 비슷한 방식으로 규제한다고 해도 원가를 공개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비효율을 최소화함으로써 이익을 창출하려는 유인이 없어진다. 이런 이유로 한국전력도 전기요금의 원가 정보를 일반 보고 목적의 재무제표와 비슷한 수준에서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원가를 공개하면 단기적으로 요금 인하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사업자는 장기적으로 투자와 혁신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운영해도 원가 수준의 수익률밖에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동통신이 민영화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통신산업의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총요소생산성 기준)은 5.9%다. 전기산업(0.9%)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통신요금의 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는 시장실패다. 정부가 통신시장에 유효경쟁 정책을 도입한 지 오래됐으나 통신요금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아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논리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다.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은 세계 2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요금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까.
인위적 가격통제 결국 실패
시장 문제는 경쟁으로 풀어야
마지막으로 법률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민간기업이 관련 법령에 따라 강제로 제출한 자료를 소비자의 알 권리를 근거로 공개해도 될까. 일본 법원은 법에 따라 강제로 제출한 영업 비밀을 ‘비밀 유지에 대한 신뢰’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도록 판결했다. 미국 법원도 강제로 제출한 자료 가운데 ‘공개되면 자료 제출 자체를 꺼리게 되는 정보’는 비공개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통신요금 원가 자료 공개 여부도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매우 민감한 이슈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로베스 피에르는 단두대까지 동원해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우유 가격을 반값으로 인하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우유 가격이 낮아져 사료값조차 건질 수 없게 되자 낙농업자들이 젖소를 도살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슷한 가격 통제 정책을 도입해 사료 가격을 절반으로 낮췄다. 이번엔 사료업자들이 건초 재배를 포기했다. 급기야 우유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유명한 ‘로베스 피에르의 반값 우유’ 사건이다. 원가 공개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쓰는 것은 아닐까.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할 때다.
□ 읽을 만한 자료△시장 경제의 재발견, 한국개발연구원(KDI)·시장경제연구원(MERI)·한빛비즈, 2012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 최광, 2009
△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로버트 L 하일브로너·윌리엄 밀버그, 2010
△도시락 경제학, 김원장, 2009
△통신서비스 정책의 이해, 정보통신연구원, 2005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