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헉! 위기때 10조원 벌어…'버핏의 명품 포트폴리오'

위기후 체리 피킹용 주식 매입
각국 정책과 산업 트렌드 중시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버핏은 역시 버핏이다. 금융위기 이후 모두가 ‘어렵다’고 했을 때 무려 1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0조원(1달러=약 1000원) 이상 번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버핏은 포트폴리오에 어떤 업종을 담아 그렇게 큰돈을 벌었을까’에 월가는 물론 전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 한번 쏠리고 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같은 슈퍼 리치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같은 위기 때 돈을 버는 투자 기법으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을 즐겨 쓴다. 마케팅 용어인 체리 피킹은 요즘엔 금융권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경제 여건이나 기업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진 국가에 속한 주식만을 골라 투자하는 행위를 말한다. 5년전 위기 직후에는 금융주와 주택관련주를 많이 사들였다. 금융위기 이후 버핏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월가에서는 이렇게 비유한다. 체리(과도하게 떨어진 주식)나무로 가득한 과수원(증시)에 빈 봉투(포트폴리오)를 갖고 들어간다. 가까운 체리 나무에서 탐스럽게 잘 익은 체리를 딴다. 그 다음 옆의 나무로 이동해서 또 좋아 보이는 체리를 따서 담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빈 주머니에는 가장 좋은 체리만을 가득 채울 수 있다. 체리 가격이 조금만 오르더라도 큰돈을 벌게 된다.

체리 피킹은 그 특성상 버핏과 같은 시장 주도력이 있을수록 더 큰 효과가 난다. 버핏이 체리 피킹으로 주식을 산다면 먼저 그 주식의 저평가된 가치가 부각된다. 또 매스컴을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되면 될수록 다른 투자자들의 주식 매입을 촉진해 주가의 상승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버핏이 체리 피킹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식을 사들일 때는 철저하게 ‘피라미딩(pyramiding)’ 원칙을 지킨다는 점이다. 피라미딩은 주식을 살 때마다 투자금액을 동일하게 유지해 주가가 올라갈수록 피라미드처럼 매입 주식 수를 적게 가져가는 방법을 말한다.

앞으로 다가올 트렌드를 읽는 데 중점을 둔 전략도 주효했다. 크게 두 가지다. 무엇보다 정책 트렌드를 중시했다. 금융위기와 함께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경제정책의 목표를 고용, 그중에서도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뒀다. 산업 정책의 우선순위도 정보기술(IT)에 비해 고용창출계수가 높은 제조업으로 이전했다. 제조업 ‘리프레시(refresh)’와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 그것이다.

IT산업은 네트워크를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일자리(특히 청년층)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른바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으로 지표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하고, 양극화도 심해진다. 하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은 생산을 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IT산업이 주도할 때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더 투입해야 한다. 제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될 때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 괴리가 발생하지 않고, 양극화도 심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S자형 투자원칙’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산업 트렌드를 잘 읽었다. 그중에서도 버핏이 가장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알파 라이징 업종’이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점에서 ‘알파’가, 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이 붙은 용어다.

또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즉 BOP(Base Of Pyramid) 관련 업종도 주목했다. BOP 계층은 세계 인구의 72%인 40억명에 이르며 그 규모도 5조달러에 달하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BOP 계층은 빠른 시일 안에 중간소득 계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넥스트 볼륨 존’ ‘넥스트 마켓’으로 불리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도 이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체리 피킹과 트렌드에 따라 선정된 종목과 함께 그때그때 경기와 증시 전망에 따른 인기주, 주도주와 관계없이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겔형 업종’을 일정 비중 이상 고수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시겔형 업종이란 석유 등 천연자원, 제약과 필수소비재와 같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식을 말한다.

투자실행 단계에서 종목이 선정되면 ‘파레토 전략’과 ‘루비콘 기질’을 발휘하는 점도 국내 투자자가 새겨둬야 할 덕목이다.

우량 대상만을 골라 투자하는 파레토 전략처럼 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투자 수단을 선택하되 일단 선택하면 루비콘 강을 건너면 되돌아올 수 없듯이 어떤 위험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초지일관 밀어붙인다. 이 원칙은 이번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