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증세에 지름길은 없다

"지하경제는 근절돼야 마땅하지만
증세 위한 양성화는 부작용 많아
경제 활성화가 최선의 증세 전략"

최중경 <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
세금 내기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국민의 의무니까 이행하는 것이고, 남들도 내니까 내는 것이고, 안 내면 처벌되니까 내는 것이다. 세금 인상은 큰 정치적 부담이며, 국민에게 한 표를 호소해야 하는 민주정치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정치적인 부담이 적고, 경우에 따라서 이득처럼 보이는 증세방법이 있다. 부자만 골라서 세금을 매기는 방법, 탈세행위를 추적해 세금을 추징하는 방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첫 번째 방법을 동원했다. 부유세인 종합부동산세가 그것이다. 국민들이 보면 정치 참 잘한다고 할 것 같지만, 2007년 대선 결과를 보면 그렇게 얘기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사람의 행동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예상과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강남 부동산을 때려잡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지만 강남 집값은 더 올랐고 덩달아 전국 집값이 올랐다. 강남이 부자동네라는 인식을 정부가 인증해준 모양이 되니 돈 번 사람들은 강남으로 가고 싶어지고, 강남에 있는 사람들은 쫄딱 망하지 않는 한 적어도 자식 결혼할 때까지는 강남을 사수하려 한다. 따라서 강남 주택시장이 공급자 절대우위시장이 되고 세금폭탄은 매매가격 상승을 통해 매수자에게 그대로 전가되는데다 부자동네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순차적 파급경로를 통해 전국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모순된 심리와 조세전가 경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일어난 정책참사다.

두 번째 방법은 현 정부가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여건에 따라서는 경제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증세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탈세는 소수의 사람만이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실히 납세의무를 이행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반대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띄는 거래, 예를 들면 대규모 투자, 부동산 구매, 고가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구입을 가급적 회피하거나 미루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거래가 실종되기 때문에 간접세 징수에 타격이 오고 경제가 위축되니 직접세 징수에도 차질이 올 것이다.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세수감소분과 추징세액 중 어느 것이 클지는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세무당국의 징세행정역량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다. 세무당국이 목표를 맞추려고 억지 추징을 한다든지, 공정성을 잃으면 세금을 잘 내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세무당국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대규모 거래를 회피하게 되고 경제는 위축된다. 지하경제 양성화 증세방안의 최선은 ‘경제도 위축되지 않고 세수도 늘어 국민의 박수를 받는 것’이다. 최악은 ‘경제가 위축되고 세수는 오히려 줄고 정치적 비난을 받는 것’이다. 경제관료 30년을 한 감으로 판단할 때 후자에 더 가까운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걱정이다. ‘경제는 위축됐지만 세수는 늘어나는 결과’를 얻어 낼 수도 있는데 이것도 정치적으로는 부담이 된다.

지하경제는 근절돼야 마땅하지만 공개적으로 할 일은 아니며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정의구현 차원의 과업이 돼야지 단기적인 세수증대방안으로 자리매김될 과업은 아니다. 일부 연예인들이 세무조사 강화 분위기에서 저축상 제의를 거부하는 최근 사태는 정책형성 과정에서 심리요인을 고려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웅변하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증세방안의 성과 평가는 내년 2분기쯤 나올 텐데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증세에 지름길은 없다. 증세는 정치와 경제에 주름살을 준다. ‘경제활성화를 통한 성장’이 최선의 증세전략이다.

최중경 <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