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문화융성'에서 외면당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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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신 문화부 기자 hanshin@hankyung.com우수 문학도서를 선정해 소외 지역에 보급하던 ‘문학나눔’ 사업이 예산 40억원 전액 삭감으로 폐지되고, 우수 교양·학술도서 선정지원 사업으로 통합된다는 본지 기사(10월22일자 A36면)가 나간 뒤 문화체육관광부는 해명자료를 내놨다. 해당 예산이 총 90억원에서 142억원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폐지’가 아닌 ‘확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계는 ‘문학’의 독립성이 사라졌다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한 시인은 “10년 가까이 살던 집을 빼앗고 남의 집에 던져 놓은 뒤 ‘더 큰 집에 살게 됐는데 뭐가 문제냐’는 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인은 “문학도서를 교양·학술도서와 같다고 보는 문체부의 시각이 놀랍다”며 “문학은 논리 이전에 독자를 타인의 다양한 삶에 공감하게 하는 특수 분야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자본’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문학나눔은 어린이도서관, 사회복지시설, 산간벽지 등에 꿈을 뿌려온 사업이다. 우수 문학도서를 받아 온 전북의 한 아동복지시설 관계자는 “매일 책 언제 오냐고 묻다가 택배아저씨가 오면 뛰어나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부산에 기반을 둔 출판사 산지니의 강수걸 대표는 “지역쿼터제를 적용해온 이 사업의 폐지로 지방출판사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지역 고유의 문화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문화융성위원회의 최근 발표와도 완전히 역행하는 정책 엇박자”라고 꼬집었다.
문학계는 우수 교양·학술도서 사업으로는 문학나눔의 기존 역할이 유지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 사업에도 문학분야가 있지만, 철학·종교·사회과학·역사 등 11개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산술적으로 142억원을 11로 나누면 약 12억9000만원이다. 문학 분야에만 40억원을 쓴다면 각 분야에서 온 선정위원들이 반발할 게 불 보듯 뻔하다.
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지었다. “문화융성을 말하며 문학사업 브랜드를 폐지하는 건 코미디입니다. 진정 문화융성에 관심이 있다면 문학나눔사업을 폐지할 게 아니라, 교양·학술도서사업 예산을 늘렸어야죠.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를 강조하고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하는 걸 보면서 기대했건만….”
박한신 문화부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