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核 대신 경제'…에너지 투자 장벽 낮춰

"외국 기업에 유전 개발·지분 허용"

인프라 늘려 원유수출 확대…3년간 1000억弗 유치 계획
이란이 핵무기 대신 경제를 선택했다. 글로벌 에너지사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 원유 생산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28일(현지시간) 발표한 것이다. 미국이 요구해온 농축우라늄 생산 중단을 발표한 지 나흘 만이다. 현실화되면 한국의 에너지 수급과 건설사 실적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석유부 장관 자문역인 메흐디 호세이니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석유산업에서 지난 수십년간 고수해온 바이백(buy-back) 방식을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백은 외국 기업이 이란에서 유전을 개발할 때 석유 생산이 시작되면 운영권을 이란 국영 석유회사에 넘겨주고 사전에 계약된 수익만 받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이 폐기되면 외국 기업도 유전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호세이니는 “‘윈윈’ 타입의 계약 방식이 도입되면 미국 및 유럽 에너지사들도 이란에서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06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내년 3월 영국 런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핵무기와 관련된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2011년 하루 350만배럴이던 생산량이 올 9월 258만배럴까지 떨어졌다. 1989년 이후 최저치다. 이란 내 석유 수요는 꾸준히 늘면서 수출 가능 물량이 줄어 이란이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2006년 500억달러에서 지난해 200억달러 수준까지 줄었다.

FT는 “외국 자본에 적대적이던 이란 정권이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서방의 투자를 유치, 노후화된 석유 생산 인프라를 개선해 원유 수출을 늘리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8월 취임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정치적 유화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이란은 지난 24일 “의료 연구에 필요한 양을 모두 확보했다”며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농축우라늄 생산을 잠정 중단했다. 27일에는 수도 테헤란 시내에 있던 반미(反美) 포스터와 현수막을 강제 철거했다. 지난달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로하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두 나라 정상 간의 통화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한국은 전체 원유의 6%를 이란에서 수입했다. 미국의 제재로 2009년 이후 신규 수주를 못 하고 있는 건설사들의 이란 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