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 근로시간 단축 비상]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중소·중견기업들 '울상'
입력
수정
지면A4
산업현장에 우려 목소리경기 수원시의 전자부품업체 K사의 박모 사장은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데 대해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시간 16시간 줄어 추가인력 20% 필요…"영세기업 문 닫을판"
현재 5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K사는 근로시간이 16시간 줄어들 경우 20% 정도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평균 급여 3000만원을 감안하면 35억원가량의 인건비가 추가 발생하는 셈이다. 박 사장은 “비용 부담도 문제지만 지금도 사람 구하기가 힘든데 그 많은 인력을 어디서 뽑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중견·중소기업들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때 △새 인력 충원 △시설투자비 부담 △기존 직원 임금 보전 등 삼중고를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비용 부담→연구개발(R&D) 투자 위축→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자금 여력이 취약한 영세기업 위주로 폐업 사태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작은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인력 충원이다. 경남 창원시 자동차부품업체 L사 사장은 “지방 업체들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어떻게 그런 정책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존 직원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가 깎였다며 사표 쓰고 다른 회사로 옮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덧붙였다. 자금 여력이 없는 영세기업은 존폐 위기에 처할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현대자동차 한 부품업체 사장은 “기존 직원들 임금도 보전해주고 새로운 직원을 구해 월급 주면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그만큼 부채상환이나 신규 기술개발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으로 중소 부품업체 대부분의 경쟁력이 약해져 영세 규모의 2, 3차 협력사들은 줄도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고문수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무는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월별로 적게는 25만대를 밑돌다 최대 40만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글로벌 경기 등 대외 변수에 따라 등락이 크다”며 “생산량이 많을 때는 부품업체들도 토·일요일 근무를 해야 하지만 25만대일 때는 인력이 남아돌기 때문에 추가 인력 채용은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노동유연성이 낮은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고용을 늘리는 것보다 설비자동화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 전무는 “중국 등 해외 공장에서 생산하고 국내로 들여오는 ‘바이백(buy back)’ 현상도 두드러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국내 부품업체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 새로운 노사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값비싼 생산설비가 필요한 부품업체 가운데 많은 기업의 재정건전성이 나쁘다는 점도 복병이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1차 협력사 27개, 2차 협력사 380개를 조사한 결과 협력사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20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부채비율이 300%에 이르는 업체도 있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자금 부담으로 적지 않은 업체들이 문을 닫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최진석/김병근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