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덫에 걸린 게임산업] "술·도박과 똑같이 보는데 인재 오겠나…게임산업 추락 불보듯"

'게임 중독법' 공청회 날선 공방

신의진 의원 "규제 아니라 중독치료·예방 법안"
업계 "발제도 찬성 위주…일방적 의견수렴"
“오늘은 저희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장을 맡고 있는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3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4대 중독 예방 관련 법률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며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앞서 인사말을 한 신의진 의원, 황우여 대표와는 같은 당 동료 의원으로서 여러 현안을 협력해 풀어가고 있지만 게임을 마약 술 도박과 같이 묶어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게임 중독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각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토론해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이를 정부와 업계가 지원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며 “절도범을 살인·성폭행범과 같은 범주에 넣지 않듯 게임을 마약 도박과 동등하게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발했다.

지난 4월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4대 중독관리법)을 발의한 신 의원 주최로 열린 이날 공청회에는 윤명숙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4대 중독물 관리 필요성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 뒤 김미선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 최승재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 이사장,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방수영 강남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수명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 이중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이 토론을 벌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게임 규제를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도 방청객으로 참여해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토론 도중 한 방청객이 뛰쳐나와 “게임을 마약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플래카드를 펼치려다 제지되는 일도 벌어졌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왼쪽) 주최로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4대 중독 예방관리제도 마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게임은 마약 아닌 문화콘텐츠”

신 의원은 “이 법안은 게임산업을 옥죄고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방치됐던 중독현상을 국가가 나서 체계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며 “마치 게임산업을 죽이는 법안처럼 알려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규제 법안이 아닌 중독 치료·예방을 위한 기본법이기 때문에 게임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산업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반대 측 주장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게임을 마약 술 도박과 같은 중독 물질로 규정하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마약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냐”며 “당장 게임 개발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우수한 인력이 게임업계를 기피하면서 결국 국내 게임산업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알코올 중독을 규제하는 것에 주류업계는 아무 불만도 없는데 왜 게임업계만 반발이 심하냐는 논리에 대해 이 교수는 “게임은 단순히 보건의학적으로만 접근해선 안 되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라고 반박했다. 공장에서 표준화된 제품으로 대량 생산되는 주류와 달리 게임은 만드는 사람의 창의성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최승재 한국인터넷PC방 협동조합 이사장은 “자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커피, 초콜릿, 인기 드라마, 스마트폰 모두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로 규정할 수 있다”며 “가장 만만한 게임업계와 PC방을 대상으로 보건복지부가 밥그릇을 만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임과 범죄 연관성부터 밝혀야 반대 측은 또 게임을 모든 부정적인 현상의 원인으로 몰고가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최 이사장은 “게임이 강력범죄의 원인이라면 게임이 없던 옛날이나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후진국에서는 강력범죄가 적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미국에서도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계속 연구 중인 만큼 좀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청회를 방청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주제발표를 한 두 명의 교수가 모두 법안에 찬성하는 측이었고 게임업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규제법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문을 막는 등 공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법안 발의부터 의견 수렴까지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