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월가, 제2도약 ②] 소리 없는 전쟁터 뛰어든 국내 증권사 … 생존 비책은?

홍콩 국제파이낸스센터(IFC)2 빌딩에 입주한 KDB대우증권 홍콩법인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홍콩 센트럴역에서 좌우로 뻗은 퀸즈거리에는 세계 최고 금융회사 간판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HSBC,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퀸즈거리에 본거지를 둔 금융회사만 200여 곳. 세계 100대 은행 중 74개가 진출해 있다. 증권업을 하고 있는 법인만 900개를 넘는다.

퀸즈거리가 ‘소리없는 전쟁터’로 불리는 이유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금융 인재들은 이곳에서 파생상품을 설계하고 세계 금융시장으로 실시간 판매한다. 조명으로 화려한 마천루 빌딩숲이 어딘지 싸늘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1990년 이후 앞다퉈 홍콩에 법인을 세웠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등 고배를 마셔야 했다.

KDB대우증권은 25년 간의 노하우를 앞세워 한국 증권사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대우증권은 1988년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먼저 홍콩에 진출했다. 지난 24일 홍콩 국제파이낸스센터(IFC)2 빌딩에 입주한 KDB대우증권 홍콩법인에서 김기영 법인장을 만났다.

◆KDB대우증권, 홍콩서 나홀로 웃는 이유
김기영 KDB대우증권 홍콩법인장.
“매일 새벽 6시40분, 여기에서 한국과 홍콩이 연결됩니다.”

김 법인장은 회의실 중앙에 있는 TV를 가리켰다. TV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해 본사의 각 부문별 인력이 실시간 회의를 진행한다. 김 법인장은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이라고 털어놨다.

“김기범 대우증권 대표도 2주에 한번 실시하는 해외 거점 화상회의에 참석합니다. 해외본부장들이 한 화면에 등장하면 김 대표가 여러 가지 조언을 건네는 식이죠. 매일 새벽에는 홍콩과 본사 인력이 세일즈 미팅이 열립니다.”현지법인에만 맡기지 않고 본사의 노하우와 역량을 고스란히 전수한다는 것. 김 법인장은 “이같은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홍콩법인이 좀더 빠르게 확장하고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으론 아시아 지역에 집중한 것을 들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현지법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언어입니다. 이곳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금융기관은 모두 영어로 통합니다. 한 기업의 표준어가 공용어로 인정이 안 됐을 경우엔 의사결정 단계가 복잡해지죠.”김 법인장은 피부색이 같거나 한자를 쓰는 문화를 지닌 아시아 지역에 집중해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8월엔 인도네시아 e트레이드증권 현지법인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인도네시아 우량 고객을 확보하고 현지 진출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에 자금 조달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베이징, 호치민 등 신흥거점에서도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

김 법인장은 단계적인 비즈니스 확장을 세 번째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KDB대우증권은 초창기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면서 4차례에 걸쳐 자본금을 늘렸다. 현재 자본금은 3억 달러. 홍콩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 중 가장 큰 자본금을 갖고 있다.

올해 실적은 기대 만큼 좋지 않다. 지난 5월부터 미국 양적완화 축소 이슈가 나오면서 채권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법인장은 IM(Investment Managing)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지난해 신설한 IM팀은 국내의 ‘큰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투자상품을 홍콩서 골라낸 뒤 서울의 상품개발본부와 함께 상품화하고 있다. 최근 첫 결실을 맺었다. 매물로 나온 미국 서부의 한 건물을 단독 투자한 것. 국내 기관을 대상으로 영업할 계획이다. 김 법인장은 “부동산 뿐만 아니라 선박펀드, 항공기 등도 투자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한 자산에 투자해 신뢰를 얻으며 계속해서 성공사례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고객들에게 좋은 상품을 공급한다는 기본 가치를 잊지 않는다면 국내 증권사의 홍콩 진출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얻을 것입니다." 홍콩=한경닷컴 이지현 기자 edi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