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만 잘도 도는 산업단지? 요즘엔 '엔돌핀'이 팍팍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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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디지털밸리 매년 문화예술 축제구로디지털밸리에 있는 지피플의 정창진 사장(53). 정 사장은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빠라~빠라~라~밤바’를 중얼거린다. 유명한 라틴음악 ‘라밤바’ 가사를 외우는 것이다. 오는 8일 저녁 구로아트밸리에서 열리는 ‘G밸리의 날’ 기념식에서 공연할 노래다.
시화·남동산단도 '흥겨운 쇼·쇼·쇼'
그는 교통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 중인 지피플의 사장이면서 이 지역 CEO합창단 단장이다. 정 사장은 50세가 되던 3년 전 합창단을 조직했다.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인생 초반 25년은 공부, 그다음 25년은 돈 버는 데 보냈고, 앞으로 25년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합창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의 뜻에 찬동해 60여명의 기업인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 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으로 로큰롤을 노래하며 춤을 췄고, 올해 공연에선 윤동주의 음악극과 라틴음악을 율동과 곁들여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라틴댄스에 걸맞은 옷과 모자도 준비했다. 이날 여성기업인 50명은 아바의 ‘댄싱퀸’ 등을 노래할 예정이다. 근로자 가요제 본선도 벌어진다.
산업단지는 이제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음악이 있고 춤과 공연이 있다. 근로자들이 함께 호흡하는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달 초 인천 주안에선 탭댄스공연이 벌어져 수백명의 근로자가 즐거움을 맛봤다. 올해 하반기 들어 벌어진 공연만 해도 시화산업단지의 ‘사물 재즈와 판소리’, 남동산업단지의 ‘조은퓨전앙상블과 함께하는 음악여행’, 천안외국인투자산업단지의 ‘세계 비보이 챔피언 익스트림 크루쇼’, 군산의 ‘퓨전타악연주’ 등 다채로웠다.
클래식 공연도 많다. 여수산업단지에선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부산녹산에서는 아카펠라그룹의 ‘세계음악콘서트’, 대구에선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다. 산업단지 내 지식산업센터에선 매주 한두 차례 피아노 공연이 이어진다. 밴드도 늘고 있다. ‘크로마뇽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창주 진흥월드 사장이 이끄는 6인조 록밴드 G밸리밴드는 지난 2일 구로디지털밸리 근처에서 하드록 공연을 했다. 연말에는 20여명의 댄싱팀과 함께 합동공연을 할 예정이다.
산업단지공단은 산업단지가 즐김터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각종 공연을 주선하고 있다. 박현정 산단공 사회공헌팀 과장은 “올해 열렸거나 열리는 프로그램만 15건(15개 단지)”이라며 “작년의 12건(12개 단지)에 비해 25%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단지를 칙칙한 공장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음악과 댄스 퍼포먼스가 있는 다채로운 문화공간으로 바꿔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단공 관계자는 “이런 문화활동을 하다가 짝을 만나 결혼하는 사례도 있다”며 “문화활동은 산업단지의 또 다른 풍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