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버렸나요" 비행기서 유서 남긴 여학생 보며 정계은퇴 뒤 입양아 손잡아주며 살겠다고 결심

美5선 정치인 신호범 의원 국내 강연

"20년내 한인 미국대통령도 가능…한인 입양아 정계진출도 도울것"
“입양아들은 매일 자신에게 묻습니다. ‘어머니 왜 나를 버렸습니까’라고.”

미국 내 한인 정치인 중 최다선 의원인 신호범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미국명 폴신·78·사진)이 지난 7일 열린 온라인교육 전문기업 휴넷 주최 강연에서 “내년 정계 은퇴 뒤 한국인 입양아를 돌보는 데 여생을 바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신 의원은 그러면서 눈물 섞인 목소리로 이 같은 목표를 갖는 계기가 된 한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4년 전 신 의원의 사무실로 한 여학생이 전화를 했다. 이 학생은 자신을 “미네소타대에 재학 중인 한국인 입양아”라고 소개한 뒤 “한국에 있는 친부모를 찾고 싶은데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신 의원은 기꺼이 승낙했다. 그는 조사 끝에 이 학생의 어머니가 한국에 생존해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신 의원과 그는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눈물을 흘리며 딸을 기다리는 그의 어머니가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곁에는 다른 자녀들이 함께 있었다. 그는 바로 “더 이상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재회를 끝으로 신 의원과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 비행기 안에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어머니 왜 저를 배반했습니까’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신 의원은 자신이 겪었던 이 같은 사연을 말하며 “세계에 한국 입양아가 13만명이 있는데,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왜 내가 이렇게 됐는지’ 자문한다”며 “정계 은퇴 뒤 입양아들을 따라다니며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고 말해주고, 가르쳐주고 손을 잡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연에서 신 의원은 자신이 한국에서 거지 생활을 하다 미국 상원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도 털어놨다. 1935년 경기 파주에서 출생한 그는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후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면서 고아가 됐다. 서울역에서 거지 생활을 하다 6·25전쟁을 겪었고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살다가 18세에 미국으로 입양돼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독학 끝에 워싱턴주립대에서 동아시아학 석·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의 정치생활은 1992년 워싱턴주 하원의원 당선으로 시작됐다. 1998년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재선에 잇따라 성공해 현재는 워싱턴주 상원 부의장을 맡고 있다. 하원의원을 포함해 5선이다.

신 의원은 이 같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힘으로 설명했다. 신 의원은 “첫 하원의원 선거에 나왔을 때 인지도도 없었고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며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선거기간에 하루 9시간을 걸어 다니며 7600개에 달하는 집을 일일이 방문했고 처음 출마한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향후 20년 안에는 한인 미국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한인 입양아들의 정계진출도 계속 도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