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직원들 강점 격려하며 조용히 '조직 혁신'…"고객이익에 방해된다"…골프·술자리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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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 - 조직 氣 살리는 포용리더십 이건호 국민은행장이건호 신임 국민은행장의 취임식이 예정된 지난 7월22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은행 임직원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임 행장이 어떤 ‘명분’을 내세워 고통 분담을 요구할지 몰라서다.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전임 행장들이 취임 일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조직 문화가 안이하다’며 혁신을 부르짖는 걸 봐 왔던 터였다. 은행장이 바뀔 때마다 조직 문화가 확 바뀌는 게 불편한 관행이기도 했다.
직원은 개혁대상 아닌 포용해야 할 인재
틈날 때마다 미팅으로 소통
하지만 이날 취임식은 열리지 못했다. 행장 취임에 반대하는 노조의 농성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사내 방송으로 전달된 이 행장의 취임사를 듣고서야 직원들은 하나둘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이 행장은 조직 개혁을 말하기보다 화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로 엉켜 있는 갈등을 풀어나가겠다”는 방법론도 제시했다. 한 직원은 “고칠 게 많다는 걸 행장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직원들을 개혁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포용을 먼저 말한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격려와 포용의 리더십
‘리딩 뱅크 복귀’의 중책을 맡은 이 행장의 생각엔 남다른 구석이 많다. 경쟁자들과 비교해 국민은행의 인력 운영이 방만하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 행장은 “인력은 낭비 요인이 거의 없을 만큼 이미 최소화돼 있다”며 “추가 감축은 은행 경쟁력의 원천을 손상하면서 수익을 올리라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국민은행은 리테일(소매) 비중이 높아 홀세일(도매) 쪽이 큰 다른 은행보다 생산성 지표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에서다. 나아가 그는 국민은행이 기업금융과 투자금융(IB) 등에 취약하다며 직원들을 다그치기보다 ‘소매 금융’에서 최고라는 걸 명심할 것을 당부했다. 약점을 부각하기보다 장점에 무게를 두고 격려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태도는 단순히 사기를 북돋우려는 차원만은 아니다. 소매금융의 강점을 앞세운 전략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이 행장의 역발상 경영전략이다.
물론 소매금융 1위에 안주하자는 건 아니다. 소매금융을 더 잘하기 위한 키워드로 그는 ‘신뢰’를 강조했다. 예전에는 수익을 늘리려고 역마진을 보면서까지 무리하게 영업할 때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예금하러 온 고객에게 보험과 펀드를 억지로 팔지 말라” (→이건호 행장의소매금융 경영철학)는 지시를 내린 이유다. 고객을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이용하지 말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소매금융으로 업그레이드해야 은행의 미래가 열린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전거·간식…직원들과 접점 넓히기 고객과의 관계처럼 이 행장은 직원 간 신뢰를 중시한다. 다양한 스킨십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데 노력하고 있다. 영업점 방문은 이 같은 소통의 일환이다.
취임 이후 그는 지점 스무 곳 정도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프랑스 전통과자 ‘마카롱’ (→지점 직원들과
티타임때 즐겨 먹는 프랑스 전통과자)을 들고 가 직원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떡볶이 통닭 피자 등 일반적인 간식을 선택하지 않은 건 신선하고 차별화된 생각으로 고객을 대하자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다.
방문은 예고 없이 이뤄진다. 외부 행사 직후 혹은 미팅을 한 후 근처 점포를 골라 수행비서만 대동한 채 불시에 들른다. 지점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영업점의 한 직원은 “행장 방문이 예고되면 현수막부터 대청소까지 준비할 게 많은데, 배려 차원에서 예고 없이 방문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고 전했다. 취미를 같이하는 적극적인 소통도 호응을 얻고 있다. 10월 한 달 동안 네 차례나 은행 내 자전거 동호회와 어울렸다. 이 행장은 헬멧과 복장 신발 등을 완비하고 직원 수백명과 자전거 타기 행사를 함께해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한 직원은 “CEO를 4시간가량 가까이서 땀 흘리며 볼 수 있어 뜻깊었다”고 말했다.
업무에선 엄격한 원칙주의자
소통을 위해 부드러움을 앞세우지만 사실 그는 엄격한 원칙주의자다. 골프를 치지 않고,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으며,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일하지 않고 꼭 쉰다는 ‘삼무(無) 원칙’을 정한 뒤 반드시 지키는 데서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골프는 대출을 원하는 기업인과 자리하는 경우가 많고, 비용도 그들이 부담하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후한 골프 접대로 기업 장래성을 보고 대출하는 은행 본연의 업무절차가 방해받으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저녁 자리에서 술을 사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좋은 음식과 융숭한 대접에 흔들릴 경우 유망한 기업과 개인이 소외되는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골프를 치지 않고, 술자리를 줄여 아낀 시간은 내부 일을 챙기는 데 활용한다. 이에 따라 이 행장 취임 후 보고 대기시간이 크게 줄었다. 국민은행 한 임원은 “예전에는 비서에게 접수한 뒤 실제 보고는 다음날 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당일 보고로 마무리된다”며 “하루 만에 의사결정이 이뤄져 일하기가 무척 편해졌다”고 전했다. 주말 하루를 쉬는 건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이 행장은 행커치프, 슬림한 양복 라인, 무지개색 양말과 같은 튀는 패션으로 보수적인 은행가에 신선한 화제를 뿌렸다. ‘고객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라는 이 행장의 패션은 사실 아내의 조언과 코디를 따른 것이다. “주말이면 아내를 따라 명동 등을 돌며 쇼핑하는 게 즐겁습니다. 우리 직원들도 일에 열정을 갖는 것은 물론 훌륭한 가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