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금융은 미완성인 발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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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금융시대 / 로버스 실러 지음 / 노지양·조윤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456쪽 / 1만7000원“탐욕스런 은행가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내미는 정부의 행태에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융이 태생적으로, 혹은 독점적으로 엘리트들의 세계이며 경제 불평등의 엔진이라고 규정짓고 이쯤에서 손을 놓아야 하는 걸까. 금융에는 분명 빈틈이 존재하고 과도한 면이 있지만, 더 풍요롭고 더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도록 도울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사진)는 《새로운 금융시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세계 경제의 연쇄적 위기를 초래했고, 금융업에 대한 비난 여론이 여전하지만 그는 이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에서 이 책이 출간된 뒤 금융을 약탈자라고 여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지만 그의 주장은 확고하다.
실러 교수는 2000년 출간한 책《이상 과열》로 주가 폭락 ‘닷컴 버블’의 종말을 예측했고, 2005년에는 집값 거품이 부동산 시장은 물론 전체 금융계의 패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해 최고의 ‘위기 예언자’라는 명성을 얻은 인물. 그가 고안한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미국 주택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지표로 활용될 정도다.
그는 이 책에서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금융의 순기능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을 이용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는 “금융자본주의는 인간의 발명품이고 아직 미완성”이라며 “어차피 써야 한다면 제대로 된 발명품을 만들어 쓰는 게 실리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기적인 몇몇 금융가의 탐욕만이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오류를 만들어낸 금융시스템도 문제이므로 이를 고쳐서 더 편리하고 바람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그는 책의 1부에서 금융자본주의의 현실을 꼼꼼히 점검하고 2부에서는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수선하고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1부는 금융자본주의라는 신체 내부의 여러 장기를 검사하는 과정이다. 그 ‘장기’들의 이름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금융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부터 자산운용사, 은행가, 투자은행, 보험회사, 트레이더와 시장 조성자, 시장 설계자와 금융공학자, 파생상품 거래자, 변호사와 재무 자문가, 로비스트, 규제 당국, 회계사와 감사, 교육자, 자선사업가….
저자는 이들이 금융시스템에서 하는 역할을 꼼꼼히 검토한 뒤 2부에서 다양한 개선책을 내놓는다. 가령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누진소득세제보다 세제를 불평등에 연동시키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면 각 세율 구간에 대해 고정된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 소득불평등이 악화되려고 하면 자동적으로 누진적인 세율이 적용된다. 저자는 이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금융적 해결책’이라고 설명한다. CEO의 스톡옵션 보상 체계에 대해서는 모럴 해저드를 막기 위해 재임기간이 끝나고 5년 후에 보상액을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또 은행의 역할에 대해서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같은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한두 개씩은 들고 있는 보험의 경우 생명보험보다 더 포괄적으로 소득 감소에 대비할 수 있는 생계보험 상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동차가 고장 났으면 고쳐서 타고 가야지 그걸 버리고 걸어가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다. “금융에 대한 적대감은 금융 발전을 저해한다”며 금융 참여자들로부터 최선의 행동을 끌어내자고 저자가 주장하는 이유다. 금융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성찰과 합리적인 제안이 돋보이는 책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