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평가권력'도 평가 받아야

기업구조 전반에 권력 휘두르는
몇몇 시민단체와 半정부 조직들
그들 자신에 대한 평가도 절실해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
대학 강의평가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전체 교수 순위를 공개하고 연구실 배정기준으로 삼는 대학도 등장했다. 좋은 평가 받기 전략도 진화한다. 성적은 부풀려지고 숙제는 줄어든다. 수강생 70%까지 A 또는 B학점을 줄 수 있는 상대평가도 기피대상이고 A학점을 모두 부여해도 무방한 영어강좌가 인기다.

강의평가를 마쳐야 해당 과목 성적을 확인할 수 있다. 성적에 대한 불만이 평가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다. 그러나 출결사항을 철저히 관리하고 중간고사와 과제물을 일일이 채점해 돌려주면 학기 중에 미리 포기하는 수강생이 많다. 기말고사에 결시해 F학점임을 이미 알고 있는 수강생도 기어코 강의평가에 가담한다. 서술형 평가는 너무 솔직하다. “그렇게 무자비한 숙제를 내고도 좋은 평가를 기대하시나요?” 강의평가 때문에 교수들이 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휴강을 자제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수강생이 ‘평가권력’을 휘두르면 부실교육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평가점수와 수강생 성적의 상관관계를 살피고 5년 또는 10년 후 졸업생을 대상으로 사후평가를 다시 실시하는 등 평가제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일부 시민단체의 ‘평가권력’은 대단하다. 수천명 임직원이 풀타임으로 매달리는 출자와 자금업무를 몇몇 시민단체가 ‘들었다 놨다’ 한다. 출자총액제한, 금산분리, 순환출자금지 등 기업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집중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지주회사는 옹호하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지주회사는 미국에서 주(州)정부가 주내에서 설립한 주식회사만 영업할 수 있도록 규제함에 따라 주마다 자회사를 설립하고 본사는 자회사 주식 전부를 보유하는 지주회사로 운영하는 구도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투명성 특효약으로 잘못 처방됐고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20%까지 낮추면서 무리하게 추진됐다. 연결재무제표 중심의 국제회계기준에서는 지분 과반수를 보유해야 연결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지주회사라는 이름을 달고도 연결대상이 아닌 난감한 사태가 초래됐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밀어붙인 것도 시민단체였다. 몰아준 이익은 주식 매각시점에서 주식매매차익으로 충분히 과세할 수 있다. 소액주주에 대한 과세 없이는 주식매매차익의 과세 정상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증여세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 대한 예상 못한 세금폭탄으로 원성이 높다.

정부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애매한 ‘평가권력’도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서 대기업을 평가해 결과를 공표한다. 대기업 두부제품 규제 때문에 국산 콩 재배 농가가 판로를 잃는 등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실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한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부분이 어려운 상황이다. 겨우 연명하는 대기업에 중소기업 협력 의무를 무겁게 가중시킨 것이다. 웅진과 STX 그리고 동양그룹이 쓰러졌고 더 많은 대기업이 비상사태다.

동양사태가 발발하면서 금융소비자원이라는 법인격 없는 단체가 돌출됐다. 소비자 보호를 전담하는 준정부기관으로 한국소비자원이 있고 독립적 금융소비자보호기구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금융소비자원’ 명칭 자체가 혼란이다. 식품소비자원, 의약품소비자원이 줄지어 등장할지도 모른다. 금융소비자원은 ‘동양증권 사기판매 공동소송 신청’ 창구를 열고 착수금을 받고 있다. 후원금 모집 공고도 요란하고 다음주에는 만찬을 제공하는 후원의 밤도 개최한다. 이런 후원금은 세제혜택 대상이 아니다. 변호사 업무 관련 착수금은 부가가치세 징수대상인데 징수 주체도 분명치 않다. 동양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불공정거래는 금융감독원 특별검사가 진행 중이고 그 결과에 따라 조치될 사항이다. 지금부터 소송을 전제로 착수금을 받는 것은 지나친 상술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평가권력’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