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기회와 위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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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대학생들에게 취업특강을 할 때마다 던졌던 질문이 있다. “여러분은 왜 창업은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을 고용하는 창업을 하면 곧바로 취업문제는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학생이 된 내 아들과 딸은 글로벌 기업이나 굴지의 대기업에서 배울 것을 더 배우고 나중에 창업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도전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들은 쉽게 하지만 과연 대학 다닐 때 벤처 2, 3개사를 차렸다가 ‘다 말아먹은’ 사람을 어느 누가 선뜻 채용하려고 나설까.
청년창업 권하기 어려운 세태
젊은 창업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경영자를 보는 눈은 항상 따갑다. 성공에 대해서는 애써 평가절하하고 실패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시간도 주지 않는다. 최근 퇴임한 이석채 전 KT 회장 이슈로 다시 화제가 된 ‘배임’이라는 것이 특히 그렇다. 원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형법 355조 2항 이하)를 말한다.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할 대리인(전문경영인)이 주주나 회사 이익에 반하는 일을 벌였을 때 그것은 배반행위라는 것이다.
물론 사리사욕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면 명백한 배임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 사업을, 그것도 의욕적으로 벌이다 실패한 사업을 회사에 대한 배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경영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새로운 기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고객, 새로운 수요를 찾는 일이다. 또 남들이 알기 전에, 경쟁사가 움직이기 전에 실행에도 옮겨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어도 그 성공 여부는 초기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위험도 크다. 새로운 기회는 남들도 가지 않은 길이어서 시장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 등 갖가지 위험이 산재해 있다.
활력 없는 '모범생'만 넘치고
실패한 사업은 결국 주주나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추진 과정에서 쌓은 노하우가 회사에 축적되고, 또 실패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 내부에서 잘 알게 돼 있다. 이런 것을 외부의 시각으로 단죄한다면 기업 경영 기본틀이 흔들리게 돼 있다. 경영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사업계획서를 검찰에 사전 제출하고 일해야겠다”는 농담까지 돌 정도다. 자칫 큰 죄를 뒤집어쓸지도 모르니 예전부터 해오던 고만고만한 일만 벌이는 ‘모범생’ 조직으로 변하게 돼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앞줄에 서 있는 대기업들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고, 경쟁력 자체가 추락하는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물론 혁신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타나게 돼 있다.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 돈키호테들은 어디에도 있다. 다만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잡고 기회를 찾기 위해 기업인들이 세계로 뛰어야 할 판국에, 공무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를 ‘복지부동’의 형국으로 몰아가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