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업체 '공룡' 탄생 임박…'반도체 코리아' 그 사이에 껴 숨막힌 경쟁

1위 美 AMAT - 3위 도쿄일렉트론 '포옹'

공정위에 '기업 결합' 신고서
핵심장비시장 25% 점유…디스플레이업계도 부담 늘 듯
반도체 장비 업계에 ‘공룡’ 탄생이 임박했다. 세계 1위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3위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이 한국과 미국, 독일 등에서 동시에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네덜란드 ASML과 함께 세계 반도체장비 업계를 이끌어온 ‘삼두마차’의 두 축이다. “소프트웨어 업계로 치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합병과 같다”(시장조사기관 VLSI의 댄 허치슨 애널리스트)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합병이 승인되면 한국 장비 업계로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이들로부터 핵심 장비를 사야하는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의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장비 ‘공룡’의 등장
게리 딕커슨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회장(오른쪽)과 히가시 데츠로 도쿄일렉트론 회장이 지난 9월24일 양사 합병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한경DB
20일 업계에 따르면 AMAT와 TEL은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들의 합병이 경쟁을 제한하는지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결합의 경우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 중 어느 한쪽의 매출이나 자산이 2000억원 이상이고 다른 한쪽이 200억원이면 신고해야 한다. 외국 기업도 여기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두 회사 각각의 국내 매출이 200억원 이상이면 결합신고가 필요하다. 이들은 미국 법무부, 독일 연방카르텔청에도 기업결합을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결합은 지난 9월24일 전격 발표됐다. 공동으로 네덜란드에 양사 지분 100%를 갖는 지주회사를 세워 통합하기로 한 것. 결합 이유는 어려운 시황을 뚫기 위해서다. 지난해 반도체 업계의 시설투자 축소로 장비 업계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AMAT는 지난해 전년에 비해 6.2%, TEL은 17.2% 매출이 감소했다.

여기에 새 장비를 개발하는 비용은 급증하고 있다. 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대에서 벽에 부딪혔고, 차세대 450㎜ 웨이퍼에 맞는 장비는 크기가 훨씬 커진다. 양사는 공동 개발로 치솟는 개발비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실제 이들은 지난 9월 말 경영 통합 발표 때 2017년까지 5억달러의 연구개발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도체 업계도 파장 클 듯 두 회사의 결합은 장비 업계에 AMAT-TEL의 독주 시대가 열릴 것임을 예고한다. 작년 양사의 매출액 합계는 100억달러가 넘어 400억달러 규모인 세계 장비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2위인 ASML(48억달러)의 두 배를 넘는다.

장비별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양사는 100여종이 안되는 반도체 장비 중 65종을 생산중이며 이중 36개 제품에서 점유율 40%를 넘게 된다. 특히 디퓨전(입자를 웨이퍼 내부로 확산 주입하는 장비)은 67%, 스피너(웨이퍼 위에 감광액을 도포하는 장비)는 89%까지 점유율이 치솟는다.

특허 경쟁력도 막강하다. TEL은 1만6000건, AMAT는 1만500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국내의 중소 장비 업체로선 기술력은 물론 가격경쟁력까지 고민해야 할 판이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국내 업체가 틈새시장을 공략해왔기 때문에 당장 시장을 뺏기진 않겠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커지는 데 이들의 결합은 큰 장벽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비 국산화율이 20% 초반인 상황에서 국내 장비업체가 도태될 경우, 반도체 장비는 미국 일본에 영원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와 삼성·LG디스플레이 등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여파가 예상된다. 서원석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부분의 핵심 장비를 공급하는 거대 장비업체의 탄생으로 삼성전자 등의 구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장비업계의 경쟁 감소로 높은 장비 값을 치러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AMAT, TEL 양사는 지난 9월 통합 발표 때 2017년 매출 182억달러, 영업이익률 25%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지난해 매출액 합계보다 두 배 가까이 성장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김현석/주용석/김병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