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필요한가

국회에 계류 중인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둘러싸고 삼성전자 등 휴대폰 제조업체와 SK텔레콤 등 통신업체,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무분별한 보조금 지급과 이용자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의 보조금뿐 아니라 제조사의 장려금(보조금에서 제조사가 부담하는 부분)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들은 이 법안이 발효되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과도한 보조금 지급으로 방통위 조사를 받을 때 영업비밀에 해당되는 스마트폰 판매량과 장려금, 출고가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것이 공개되면 해외 경쟁사에 마케팅 전략이 노출돼 외국 통신사 등과의 협상에서 교섭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제조업체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제조업체들이 불투명한 장려금으로 시장을 교란해 후발·중소 제조업체들이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제도 개선으로 건전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 가계 통신요금을 낮추는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통신사들도 미래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혼탁한 보조금 경쟁에 제조업체들의 장려금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그동안 통신사만 규제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에 대해 정진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권영선 KAIST 교수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 보조금 차별 등 바로잡아 공정한 요금체계 세워야

휴대폰 보조금은 국내 이동전화 시장 초기에 이용자의 서비스 가입 비용을 낮춰 신규 가입을 촉진함으로써 이동전화 및 휴대폰 시장 성장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동전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이런 순기능보다는 이용자 후생 및 형평성을 저해하는 폐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

우선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 행태가 과도한 탐색비용을 유발한다. 더불어 지역, 시기, 서비스 가입 형태 등에 따른 차별적 보조금 지급으로 인해 부당한 이용자 차별도 야기한다. 심지어는 며칠 사이에 할부원금이 7만원과 70만원을 오가면서 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부작용에 따른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라인 야간 특가’ ‘보조금 지방 원정대’ ‘마이너스폰’ 등의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같은 단말기라 할지라도 시기 장소 지역 등에 따라 200~300% 넘게 가격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기형적인 단말기 유통구조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이 같은 이용자 간 차별은 비용 절감, 경쟁에 의한 합리적인 가격 차별이 아니며 정상적인 가격전달체계를 왜곡한 전형적인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폐해를 근절하고 투명하고 건전한 유통구조 형성을 위해 발의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법안은 △보조금의 부당한 차별 금지 △보조금 공시 △고가 요금제 강제 계약 체결 제한 △단말할인·요금할인 선택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법안과 관련해 소비자와 이통사 외에도 제조사, 대리점·판매점 등 휴대폰 유통 관계자들이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휴대폰산업 위축은 '기우'…영업비밀은 법으로 보호

최근에는 법안이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휴대폰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법안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휴대폰 원가, 장려금 등의 공개에 따른 국내 제조사의 글로벌 경쟁력 및 협상력 약화와 중복 규제를 지적한다. 또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보조금 단속에 따라 위축된 국내 휴대폰 산업을 더욱 얼어붙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주장들은 법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잘못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주장들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안이 규정한 제출 자료는 유통 현황 파악을 위한 판매량, 장려금 규모 등이다. 제조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휴대폰 원가 자료가 아니다. 게다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는 정보공개 관련 법령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법과의 중복 규제 문제도 이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했다. 법안 자체에서도 공정거래법과 동일한 사유로 이중 처벌하지 않는다고 확인까지 해주고 있다. 이렇게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일부 제조사가 왜곡된 사실에 기반을 둔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 휴대폰 시장은 스마트폰 이용이 보편화하면서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의 3분의 2 이상이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및 교체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휴대폰 시장 규모가 향후 감소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시장 위축을 보조금 규제나 법안 탓만으로 돌리는 일부 제조사의 주장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국내 휴대폰 교체율 세계 1위(약 16개월로 2위권 국가에 비해 8개월 빠름), 국내 출시 휴대폰의 평균 공급가가 세계 1위(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2012년 조사 기준)라는 사실과 가계소비 지출 중 통신비(휴대폰 구입비용+통신요금)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 성장의 이면에 불필요한 통신 과소비로 인해 가계 통신비 부담이 높아지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휴대폰 판매와 요금제를 연계한 상황에서 보조금 과열 경쟁이 이용자로 하여금 고가 휴대폰-고가 요금제를 선택하고 잦은 휴대폰 교체를 유발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통신비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제조사가 중저가 시장 형성 등에는 소극적이면서 소비자가 고가 스마트폰을 16개월마다 교체하도록 부추기는 현재의 ‘고가 프리미엄폰 중심의 기득권 시장을 유지’하고자 소비자의 부담은 철저히 외면하겠다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단말기·요금 할인 등 소비자가 선택하게 해야

투명하고 건전한 유통구조 아래에서 이용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유인하기 위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런 노력에 부합하고 지속 가능한 국내 휴대폰 시장의 성장과 소비자의 후생 극대화를 위해 법 시행 전·후로 보완할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제조사도 ‘고가 프리미엄폰 시장 유지’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중저가 단말기 출시 확대와 단말기 시장의 진정한 경쟁 활성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할 것이다.

반대 - 시장과 거꾸로 가는 규제…가계 통신비 부담만 늘 것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을 했다. 연설에서 대통령은 제조업, 입지, 환경 분야 중심으로 추진돼온 규제 완화를 전 산업 분야로 확산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부가가치 높은 산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나갈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런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정책(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정부부처가 기안하고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반대한다. 첫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이용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와 정반대로 이용자의 희생을 통해 이동통신사의 수익성만 높인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강력한 보조금 규제 정책을 시행해왔다. 위반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66일간 순차적인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최근엔 한 사업자가 나홀로 영업정지를 받았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보조금 규제 정책의 효과를 통신업체의 재무 성과에서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보조금 지출이 감소한 만큼 이동통신사들의 재무 상태는 개선된다는 것이다. 반면 가입자는 보조금이 줄어든 만큼 더 지불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보조금 규제인지 너무나 자명하다.

보조금 줄어든만큼 비싸져…소비자보다 이통사에 혜택

1970년 미국 의회는 청소년 흡연 문제를 해결하고자 TV 담배 광고를 금지했다. 그런데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이 뜻하지 않게 담배 제조업자의 이윤을 급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담배 제조업자들의 이윤은 광고비 감소로 6000만달러(환율 1000원 적용시 약 600억원)가량 증가했다. 보조금 규제 정책은 똑같은 효과를 낳는다. 담배 광고 금지는 청소년 흡연을 줄이는 개연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줄어든 보조금만큼 소비자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친기업 정책이지 친소비자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이 법안은 보조금 규제로 어떻게 이용자의 통신 요금을 낮출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보조금을 규제해온 정부는 지금까지 그 대가로 이동통신사의 요금 인하를 이끌어낸 적이 없다. 만약 보조금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보조금 규제를 위반할 때마다 이동통신사들이 기본요금을 매월 1000원씩 낮추도록 해보자. 기업만 배불리지 않고 통신 요금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즉 소비자에게 필요한 법은 이동통신 요금을 인하하기 위한 법이지, 이동통신 시장의 수직적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미시적 규제 권한을 줌으로써 관료의 힘만 강화시키는 유통구조 개선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소비자의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 과정을 살펴보면 단말기 보조금 증가와 요금 인하는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소비자는 이동통신 단말기 판매점이나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단말기와 요금제를 동시에 선택하고 대개는 2년 약정 조건으로 가입한다. 통신 서비스 가입시 소비자가 매월 납부하게 될 예상 금액을 단순화해 소개하면 이렇다. 단말기 가격을 24개월로 나눈 월 단말기 분납 금액에 소비자가 선택한 요금제에 따른 월정 요금을 더한다. 여기서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24개월로 나눠 차감하면 매월 지불해야 할 통신 요금이 나온다. 소비자는 이를 고려해 단말기와 요금제를 선택한다. 결론적으로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시 소비자가 고려하는 변수는 월간 순 예상 납부액(월 단말기 할부금+월정 요금-월 약정 보조금)이다. 보조금 감소가 월정 요금 인상과 똑같은 변수로 작용한단 얘기다. 정부가 보조금을 규제하면 소비자의 월간 순 예상 납부액은 늘어난다.

통신요금 낮출 대안 안돼…보조금 경쟁 자율에 맡겨야

이동통신 3사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약정 기간을 어기고 2년 이내에 통신사를 변경하는 가입자가 통신사에 지불해야 하는 위약금 제도를 바꿨다. 기존의 잔여금 반환 방식에서 이미 할인받은 금액을 되돌려줘야 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과거엔 24개월 약정 조건으로 가입시 총 48만원의 보조금을 받았다면 18개월 후 해약할 때 남은 약정 기간인 6개월분에 해당하는 12만원을 위약금으로 내면 됐다. 그러나 새 위약금 제도가 적용된 후엔 이미 18개월 동안 할인받은 금액을 반납해야 한다. 물론 가입 후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가입기간에 따라 할인받은 금액 전액을 반납하지 않고 일부를 되돌려준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이 사실상 요금할인이란 것을 반증한다. 일각에선 약정 보조금이 소비자의 가입 시점과 장소, 선택한 요금제, 연령 등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그러나 보조금 차별 문제가 단말기 유통의 수직적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사전 규제를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회적 후생 손실을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포화된 이동통신 시장에서 보조금 경쟁을 자율로 풀어 소비자가 더욱 대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계통신비 절감에 기여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규제 완화를 전 산업 분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천명한 국회에서 정부와 여당은 이동통신 산업의 기존 규제를 어떻게 철폐해나갈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마땅하다.

■ 읽을 만한 자료△이동통신시장 단말기 가격형성 구조 연구, 방송통신위원회, 2011
△단말기보조금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산업연관 분석, 김용규·강임호, 2010
△단말기 번들링과 보조금: 단말기 경쟁효과, 정인석, 2013
△권영선 교수 블로그(http://yskwonicu.blog.me/)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