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낭만을 담은 '작은 한양'…시간여행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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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조선시대에 작은 한양(小京·소경)으로 불렸을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던 나주. 나주 하면 영산강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나주에는 그밖에도 굽이굽이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소경(小景)들이 가득하다. 나주읍성권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의 이야기가, 영산강가에 자리한 등대와 선창거리 모습에서는 근대문화의 이야기가 살아 숨쉰다. 보고 또 봐도 매력적인 곳, 전라도의 원형인 나주로 떠나보자.
영산강의 땅 나주
호남 젖줄 영산강
그림같은 항포돛배
유유히 떠다니고
나주 금성산엔
야생차 군락지
10~12월이면
녹차꽃 볼 수 있어
톡 쏘는 홍어
개운한 나주곰탕
구진포장어까지
맛의 향연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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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산에는 8㏊가 넘는 야생차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나주는 고려시대 임금께 진상했던 뇌원차가 만들어진 곳이다. 뿐만 아니라 다도의 이론과 실제를 생활화면서 우리 전통차 문화를 꽃피운 초의선사의 출가지이자 다산 정약용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자연이 키워내는 금성산 차는 그 향과 맛이 뛰어나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금성산 찻잎을 수매해 갈 정도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매년 10~12월이면 소담하게 피고 지는 녹차꽃을 볼 수 있다.
◆고요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행길 2000년 나주의 역사를 품고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위로 떠가는 황포돛배는 한 폭의 그림 같다. 황포돛배에 올라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을 느끼며, 영산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 옛날 번성했던 시절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마치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영산강은 호남을 관통해 흐르는 젖줄이지만 나주에 와서야 비로소 그 광활함과 비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나주의 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산강은 문화를 실어 나르는 길이었으며 나주평야를 적셔주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따라서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면서 영산강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금강정 오솔길을 따라 올라 영산강의 일출을 바라보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그 위로 떠오르는 태양빛이 환상적이다.
나주시에서 27㎞ 떨어진 덕룡산 중턱에 있는 불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절 가운데 하나로, 백제 침류왕 때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불회사는 가장 이른 시기에 불교가 전래된 도량이며,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산수를 자랑한다. 그 때문인지 ‘가면 갈수록 맛이 나는 절’이라고 일컬어지며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주변의 전나무, 삼나무, 비자나무 숲은 아늑한 분위기를 이루며 늦은 가을에 물드는 단풍 빛깔 역시 아름답다. 종이로 만든 불상이 모셔진 대웅전과 절 입구에 서서 호법상의 역할을 하는 석장승은 익살스럽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어서 친근감이 넘친다. 불회사 뒤편으로 오래된 동백나무숲이 어우러져 한겨울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것만은 꼭! 나주의 3味
나주는 맛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산포 홍어의 톡 쏘는 맛과 나주곰탕의 맑고 개운한 맛, 스테미너 만점인 구진포 장어까지 다양한 맛의 향연에 빠질 만하다. 국내 최초로 장이 섰던 나주 장터에서는 순댓국이나 해장국 대신 곰탕을 많이 팔았다. 주변에 넓은 곡창지대가 있다 보니 곰탕의 재료인 소가 흔했고, 근처에 관아가 있어 여유 있는 고을 아치들이 곰탕을 즐겨 찾았기 때문이다. 나주의 곰탕은 양지와 사태를 주로 쓰고, 삶는 과정에 차별화된 노하우가 있다. 나주곰탕은 장꾼들의 입 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 남도의 육류문화를 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말갛고 시원한 국물에 묵은지와 깍두기가 어우러져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나주곰탕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금계동 일대에 자리한 나주곰탕 거리에 가면 ‘하얀집’ ‘남평’ ‘노안’ 등 전통적 곰탕집이 여럿 있다.
영산강에 자리한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민물장어가 많이 잡혀 장어구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구진포 장어는 특히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지금은 자연산 장어가 잡히지 않지만 특유의 조리법이 여전히 살아있는 만큼 장어 맛의 명성은 여전하다. 가볍게 바른 양념장으로 느끼한 맛이 사라지고 간이 적당히 밴 장어 맛이 일품이다.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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