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유기업, M&A 허용…'중국판 재벌'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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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전회' 2만자 全文 뜯어보니지난 12일 폐막된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설립하기로 한 국가안전위원회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가안전보장회의(NSC)보다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된다. 국유기업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국유자본투자회사라는 새로운 형식의 기업 형태도 도입, 계열사 수십개를 거느리는 ‘중국판 재벌’의 길을 열었다. 3중전회가 끝나고 사흘 뒤 나온 ‘전면적 개혁 심화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중대 문제 결정’ 전문을 종합 분석한 결과다. 중국은 3중전회 결정사항을 단계적으로 내놨다. 나흘간 진행된 3중전회가 폐막한 12일 저녁 발표된 ‘공보 요점’은 9줄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밤 일종의 요약문인 ‘공보’를 발표한 데 이어 14일 밤에는 60개 항목의 결정 사항을 간략히 내놨다. 그리고 15일 밤 최종적으로 나온 문건이 A4용지 33쪽, 2만1427자에 이르는 전문이다.
'기업 집단' 체제 넘어 사업다각화 본격화
국가안전위 역할, NSC보다 FBI에 가까워
농지 소유 가능해도 재산권 행사 쉽지 않아
○국가안전위원회, NSC 아닌 FBI?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국가안전위원회 설립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 공개된 공보 요점에는 “국가안전위원회를 설립한다”는 한 문장만 나왔다. 명칭이 NSC와 비슷해 외교·안보 관련 총괄기구로 국내외 매체에서 보도됐다.
하지만 전문에서는 국가안전위의 역할로 국내 치안 유지를 강조했다. 국가안전위가 언급된 50항은 “공공안전시스템을 완비한다”며 △식품안전 △사회 치안 종합관리 △인터넷 관리 및 정보 보안 강화 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 “국가안전위를 설립해 국가 안전체제와 국가 안전전략을 개선하고 국가 안전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공보에서도 “사회조직의 활력을 높이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혁신하며, 공공안전시스템을 완비해 국가안전위를 설립한다”고 명시했다.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센터장은 “발표문을 토대로 보면 국가안전위는 국내 문제 해결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조직으로 볼 수 있다”며 “처음에는 국가안전위를 NSC로 생각했던 중국 내 전문가들도 FBI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국가안전위가 외교·안보 관련 역할까지 수행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정부가 의도를 숨기기 위해 핵심 내용을 전문에 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M&A 나서는 국유기업
국유기업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국유자본투자회사’라는 새로운 기업 형태가 도입된다. “조건을 갖춘 국유기업을 국유자본투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전문에서는 국유자본투자회사의 역할로 “국가 전략 목표 및 국가안전 국민경제와 관련된 사업 및 영역에 대한 투자”를 규정했다.지만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기업 및 개인의 해외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3중전회 결정과 맞물려 국유기업이 인수합병(M&A)을 통한 덩치 키우기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단순히 비슷한 업종의 기업을 묶어놓은 체제를 넘어 정유회사가 화학회사를 인수하는 식의 사업다각화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유기업의 덩치가 커지면서 늘어나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거둬들여 복지비용에 쓸 계획이다. 전문은 “국유기업 이익금 중 공공에 납입하는 비율을 2020년 30%까지 높여 사회보장기금 보강에 쓸 것”이라고 밝혔다.
○분쟁 불씨 남긴 농민 재산권 분배가장 진일보한 3중전회 결정으로 평가됐던 농민에 대한 토지 소유권 분배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 집단자산에 대해 농민이 담보를 얻고 상속을 할 수 있는 지분을 부여한다”고 하면서도 “농촌의 집단 토지 소유정책을 견지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농민 개개인의 농지 소유는 가능해졌지만 매매를 비롯한 재산권 행사는 여전히 농촌 집단에 묶이게 된다. 지 연구위원은 “개별 농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농지 처분이 이뤄질 수 있어 농·농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심각한 사회문제인 농민공(도시로 이주해온 농민 출신 노동자) 문제 해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농민공은 도시 호적을 받지 못해 복지 및 교육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전문은 “인구 20만명 이하 소도시는 호적을 전면 개방하고 20만~50만명의 중등도시는 점진 개방하겠다”면서도 “50만~100만명인 대도시는 조건에 맞는 이들에 한해 호적을 부여하고 거대도시는 인구 유입을 제한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농민공 문제는 대부분 베이징 상하이 등 거대도시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호적제도 개편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