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中企 적합업종, 확 바꾸자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시행(2011년 9월)한 지 2년여가 지났다. 서울장수(막걸리) 무궁화(세탁비누) 대호산업(재생타이어) 등 일부 ‘잘나가는’ 중소기업은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은 긍정적인 변화가 거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막걸리 시장은 올 들어 7%가량 줄었다. 두부도 4~5% 정도 감소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1+1’ 마케팅을 하던 대기업들이 ‘사업 철수’나 ‘확장 자제’ 등 각종 제재를 받다 보니 시장 자체가 위축됐다. 대기업 참여가 제한된 공공기관 급식시장에서는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그쳤다. 나머지는 외국계 기업과 국내 중견기업에 돌아갔다. 대기업이 물러나면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땅’이 그만큼 커질 것이라는 계산은 틀렸다.

'대기업 규제'는 잘못된 출발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잘못은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분기에 5조원 이익을 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기보다는 ‘대기업 이익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게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이었다.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먹는 입’을 더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도 문제였다. 대기업을 시장에서 빼면 중소기업이 먹을 파이가 커지는 게 아니었다. 소비자 외면으로 파이 자체가 줄었다. ‘시장에서 선택권은 소비자가 갖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한 결과다. 파이 크기를 결정하는 주체는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소비자였다.

중기 적합업종 제도를 살릴 방법은 있다. 발상 단계에서부터 확 바꾸면 된다. 대기업을 빼낼 게 아니라, 중소기업이 현재 없는 업종들 가운데서 ‘중기 적합업종’을 지정하자.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지배하던 시장에 중소기업이 뛰어들도록 유도하자.

中企 없는 곳에 '적합업종' 만들자 중소기업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을 이길 수 있는 품목은 많다. 예컨대 위닉스(제습기)나 쿠쿠전자(전기밥솥)는 대기업이 즐비한 시장에서 ‘1위’가 됐다. 모든 산업에서 제2, 제3의 위닉스와 쿠쿠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각종 진입장벽을 없애고 문턱을 낮추자.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가운데서는 주변에 마땅한 중소기업(협력사)이 없어 부품을 어쩔 수 없이 직접 만들거나 독일 일본 등에서 사다 쓰는 곳도 많다. 얼마 전 만난 류병훈 EMW 사장은 “휴대폰 하나에 들어가는 안테나가 10개나 되고, 사양도 제각각”이라며 “이런 부품은 대기업도 직접 만들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새로 개척할 사업 아이템이 많다는 게 류 사장의 얘기였다.

자동차와 스마트폰, 각종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어떤 품목을 중소기업이 맡아 줬으면 좋을지에 대해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하면 어떨까. 상당수 대기업이 아마도 상당히 긴 ‘중기 적합품목 리스트’를 내놓을 것이다. 이 분야에 중소기업이 뛰어들도록 유도하고, 그래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동반성장 아닐까.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