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파생상품 시장 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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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2년 전 이맘때 본란에 ‘헛다리 짚은 파생시장 대책’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정부가 파생상품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막는다며 당시 준비 중이었던 대책들이 대부분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11·11 옵션쇼크’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정부 대책은 불공정거래 근절보다는 개인투자자의 시장 접근을 가급적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코스피200 옵션 거래 단위를 포인트당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높이고 주식워런트증권(ELW)을 거래하는 스캘퍼에 초과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 등이 당시 검토되던 방안들이다.
엉뚱한 규제로 급격 추락 개인투자자들이 파생시장에서 돈을 잃는 주된 이유는 급격한 시장변동성 때문이다.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며칠에 걸쳐 지수를 흔들어대는 불순 세력의 ‘장난’ 내지 작전에 걸려들면 증거금이 부족한 개인은 속수무책 손절매를 강요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불공정거래를 근절할 생각은 안 하고 “개인들은 손해가 크니 가급적 시장에 오지 말라”는 식이었다. 마치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펀드나 회사채의 불완전판매가 많다고 펀드 가입이나 회사채 투자 요건을 까다롭게 만드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던 한국 파생상품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다고 한다. 거래량 기준 2011년 1위에서 최근에는 10위로 급전직하 중이다. 글로벌 파생상품 시장 거래량(올 1~8월)이 전년 대비 4.5% 증가한 반면 한국은 무려 63.1%나 줄어들었다. 불공정거래를 막을 이렇다 할 장치는 마련하지 않은 채 엉뚱한 규제로 투자 장벽만 높여 놓으니 시장이 고사하는 건 당연하다. 파생시장 추락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공정거래 막을 시스템 시급 파생상품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거래 위축이 뭐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문제는 파생시장이 주식시장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데 있다. 주가를 움직이는 주요 힘인 프로그램매매는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 없이는 불가능하다. 파생시장 위축은 현물시장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기업 직접금융시장 위축과 직결된다. 무턱대고 규제해서는 곤란한 이유다.
파생시장이 휘청이자 이런저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대표적인 게 새로운 파생상품을 다수 상장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위축된 건 상품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2008년 상장된 돈육선물은 거래량 부족으로 상장 폐지 위기에 처했다. 코스피200 선물·옵션을 제외한 다른 상품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거래소는 ELW 호가 규제 완화와 스캘퍼 차단 등을 당국에 건의할 모양이지만 이 역시 지엽말단적 접근이다.
중요한 것은 파생상품 시장의 불공정거래를 적발하고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래야 옵션쇼크 같은 사건도 사라지고 ‘파생상품=인생막장 코스’라는 자조적 말도 없어진다. 몇몇 큰손들의 사실상 지수 조작으로 개인들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일이 반복된다면 한국 파생시장엔 희망이 없다. 시장의 기본적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규제는 안 하고 엉뚱한 규제만 해대니 시장이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