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뮤지컬계 '쉬리' 나오려면…

송태형 문화부 차장 toughlb@hankyung.com
뮤지컬 제작자들은 종종 영화 ‘쉬리’ 얘기를 꺼낸다. 이른바 ‘쉬리론’이다. 이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의 종전 국내 최고 흥행기록을 깨며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것처럼, 창작 뮤지컬에서도 그런 ‘킬러 콘텐츠’가 나와야 한국 뮤지컬 산업의 질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지금의 뮤지컬시장은 ‘쉬리’ 이전 할리우드 영화 직배로 한국 영화의 위기감이 팽배했던 1990년대 영화시장과 비슷하다. 단순 비교하면 제작 규모와 환경, 관객 선호도 등에서 창작 뮤지컬은 당시 한국 영화, 외국 작품을 수입해 한국어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닮았다. ‘빛 좋은 개살구’ 뮤지컬시장

연간 제작 편수는 창작이 110~120편으로 30~40편인 라이선스보다 월등히 많지만, 시장점유율은 반대다. 라이선스가 70~80%다. 라이선스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스타 캐스팅도 쉽다. 목 좋은 대극장은 주로 라이선스가 차지한다. 창작은 제작비 마련이 힘들다 보니 중·소극장용 작품이 많다. 대극장 대관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다. 제작이 무산되기 일쑤고, 관객도 적게 들다 보니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꺼린다.

이런 환경에서 ‘쉬리’와 같은 킬러 콘텐츠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로또 당첨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라이선스만으로는 한국 뮤지컬 산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 종사자들은 국내 시장 상황을 ‘외화내빈(外華內貧)’ ‘빛 좋은 개살구’로 표현한다. 제작사 간 외국 작품 확보 경쟁은 저작권료를 높여 놨다. 요즘 대형 라이선스 작품은 티켓값의 15~20%를 외국 저작권자에게 준다. ‘대박’을 내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라이선스 작품이 국내 뮤지컬시장을 키우고 저변을 확대해 왔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잘 만든 콘텐츠가 관객층을 더 넓힐 수 있다. 영화로 예를 들면 국내에서 10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한국 영화가 9편, 외화는 ‘아바타’ 한 편뿐이다.

정부·기업, ‘사람’부터 키워라

‘창작 뮤지컬도 잘 만들면 외국 작품보다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작품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와 대기업문화재단 등의 창작 뮤지컬 지원 프로그램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 공모를 통해 신작 발굴이나 초연 등에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주로 ‘돈’이다. 정작 중요한 ‘사람’을 키우는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다. 창작 뮤지컬에서 가장 취약한 것은 대본 음악 안무 등 1차 창작물이다. 배우가 아닌 극작가 작곡가 안무가 등 1차 창작자들을 육성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1984년 문을 연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처럼 공적 자본을 투입해 창작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뮤지컬 아카데미’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KAFA는 봉준호 박찬욱 최동훈 장준환 등 극작과 연출을 겸하는 감독들을 배출하며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을 이끌었다.

뮤지컬은 창작자들이 초기 아이디어부터 공유하며 함께 작품을 설계하는 협업이 중요하다. KAFA 시스템처럼 재능 있는 인재들이 1년여간 함께 교육을 받고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작곡가)-팀 라이스(작가)’와 같이 ‘킬러 콘텐츠’를 함께 창작하는 명콤비 탄생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송태형 문화부 차장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