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잘라파고스와 코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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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변화 외면해 고립 자초한 일본찰스 다윈은 영국 군함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면서 1831년부터 1836년까지 긴 탐험에 참가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그의 역작 ‘종의 기원’은 바로 이 항해에서 탄생했다. 특히 비글호 항해 중에 이뤄진 갈라파고스제도 탐사는 그의 이론 정립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이 발견한 물고기 15종, 식물 100종 정도가 새로운 종이었다.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섬에 고립된 채 수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섬의 생물들은 육지와 동떨어진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저성장·고령화로 불안한 한국 경제
정치 싸움이 경제발목 잡아선 안돼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
수년 전 가쓰노 다케시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일본을 의미하는 ‘자팬’과 고립을 상징하는 ‘갈라파고스’를 합친 ‘잘라파고스’라는 합성어를 제시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 같은 회사들로 대표되는 일본의 정보기술(IT)산업이 최고의 신기술 개발에 성공하는 등 나름대로 잘나갔지만 국제표준을 무시하며 독자적 행보를 걷는 바람에 세계시장에서 뒤처졌고, 결국 현재의 부진한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것을 ‘잘라파고스’ 현상이라 부른 것이다. ‘물건만 잘 만들면 알아서 팔린다’는 고집 센 장인정신도 문제가 됐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자만심도 겹쳐졌다. 일이 잘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엉망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물론 최근 일본 IT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엔저에 힘입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다. 기본적 저력이 있는데다 아베노믹스와 올림픽 유치 등을 통해 경제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 뒤처진 부분을 따라잡고 과거의 영광을 부활시킬 가능성도 있으므로 잘 지켜봐야 하겠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일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다른 신흥국들로부터는 해외자본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다행히 최근 우리 경제로 해외자본이 유입돼 금융시장은 안정되고 있고, 이를 보며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상황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을 보면 일단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할 경우 주가지수가 1600 수준이라는 지적을 듣게 되면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이뤄낸 만큼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봉착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저성장과 노령화라는 ‘뉴노멀’이 한국 경제에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내년 성장률은 4%에 달하면서 경제가 훨씬 따뜻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2015년 초반 경기가 정점을 기록하며 내년 경제는 그야말로 반짝 회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2017년께 한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비율은 14%에 달해 우리 사회는 유엔이 정한 노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일단 노령사회로 진입하면 성장 동력은 더욱 사그라질 것이고 복지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져 미래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기가 만만치 않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바짝 긴장하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미래를 위한 준비에 임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경제 활성화와 창조경제를 통한 미래 준비에 전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정치의 모습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수많은 경제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고 정부 셧다운(일부 폐쇄)마저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준예산 편성 운운하는 이야기마저 나오는 것을 보면 ‘이거 이래도 되나’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세계 경제는 위기를 딛고 서서히 회복되고 있고, 이웃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잘라파고스’ 현상을 극복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유독 집요하게 과거에만 집착하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경제의 발목을 으스러져라 잡고 있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 ‘코리아’가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되는 ‘코라파고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점점 불안해진다. ‘코라파고스’ 현상은 어떻게든 피해 가야 할 것 아닌가.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