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복권에는 돈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은 찾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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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노믹스 - '웨이킹 네드'로 본 복권의 경제학
아일랜드 시골 노인 네드, 복권당첨에 흥분해 심장마비로 사망
집 찾아갔던 재키와 마이클 네드를 가장해 당첨금 챙기기로 결심,
마을 사람들에게 협조 구하고 대신 돈을 공평하게 나누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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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혼자 사는 어부 네드 드바인이 복권 당첨의 주인공인 걸 알게 된 재키와 마이클. 하지만 음식을 잔뜩 싸들고 집으로 찾아간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복권표를 쥔 채 누워 있는 네드의 차가운 주검이었다. 복권 당첨 사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복권표를 버리느냐 아니면 네드를 가장해 당첨금을 받아내느냐다. 결국 복권회사를 속이고 당첨금을 챙기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협조를 당부한다. 대신 당첨금을 공평하게 나눠 갖자고 제안한다.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1999년 개봉한 아일랜드 영화 ‘웨이킹 네드’는 눈앞에 찾아온 행운을 차지하기 위해 순박한(?) 시골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로또, 질 수밖에 없는 확률 게임
흔히 복권 당첨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들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벼락 맞을 확률은 대략 180만분의 1이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복권이든 한국의 로또복권이든 6개 숫자가 모두 맞아야 하는 1등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로또 1등 당첨 확률)이다. 2002년 말 로또복권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누적판매액은 약 29조원. 반면 당첨자는 대한민국 성인 인구의 0.01%에도 못 미치는 3000여명에 불과하다. 복권은 확률적으로 ‘돈을 잃게 돼 있는 게임’이다. 지난주 제573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당첨번호 6개를 모두 맞힌 사람은 8명으로 당첨금은 각각 16억4500만원이었다. 하지만 베팅 1회당 1000원을 거는 로또에서 1등에 대한 기댓값(16억4500만원×814만5060분의 1)은 고작 202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1등을 기대하면서 복권을 사는 순간, 무조건 798원을 떼어준다는 얘기다.
게다가 로또 당첨금은 아예 판매금액의 50%로 설계돼 있다. 1000원짜리 로또 한 장을 사면 500원을 운영비와 공익 기금으로 쓰고 500원이 당첨금으로 나간다는 얘기다.
왜 로또를 살까
복권은 ‘역진적 세금’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도시 복원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복권 이벤트를 연 적이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제14회 런던 올림픽(1948년)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으로 ‘올림픽 복권’을 판매했다.
하지만 복권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역진적 세금(regressive tax)’이라는 지적도 자주 받는다. 일반적으로 조세 체계는 가난한 사람이 덜 내고 부자가 상대적으로 많이 내도록 돼 있지만 복권의 경우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 영화에서 복권을 사는 시골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거나 돼지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간다. 이들에겐 복권 구입이 힘겨운 현실의 탈출구이자 지루한 일상의 한 줄기 희망이었던 셈이다.
복권은 경기가 불황일수록 잘 팔리는 대표적 상품이다. 미국에서는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복권 판매액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다보니 복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좋을 리 없다. ‘복권의 역사’의 저자 데이비드 니버트 미국 위튼버그대 교수는 “복권은 사람들에게 ‘일확천금’이란 공허한 꿈을 꾸게 하며 현실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일부 복권 중독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인 설명일 수 있다. 복권의 참된 묘미는 적당히 즐기는 데 있을 것이다. 문득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복권을 손으로 툭툭 치며 잠시 행복한 공상에 빠지는….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