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金태환 중단…'인플레이션 일상화'란 판도라 상자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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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 세계 경제를 바꾼 사건들 (11)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금·달러 고정비율로 교환하는 브레턴우즈 체제 작동했으나
美 전후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달러의 구매력 떨어지자 닉슨 대통령, 금태환 창구 폐쇄
정부·중앙은행 신중함 외에는 통화 발행 제약할 기능 없어져 세계 경제 불안정성 커져


인류가 본격적으로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안정성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71년 8월15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달러화 금 태환 중지로, 전 세계적으로 금과의 연계가 완전히 사라진 불환지폐(不換紙幣) 시대가 개막되고서부터다. 물론 19세기 금본위제 아래에서도 정부와 은행들은 화폐 공급을 탄력적으로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금의 공급량이 제한돼 있어 통화량을 늘리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화폐 공급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이런 금 공급의 비탄력성을 금의 족쇄(Golden fetters)라며 공격했다. 이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족쇄가 화폐를 정치적 필요에 따라 조작하려는 시도를 억제했다는 사실이다. 금본위제 시대에는 세계적으로 교역이 증대한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도 생기기 않았다.
초기에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잘 작동했다. 전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 보유액을 자랑하고 있던 데다 미국을 제외한 2차 세계대전 참가국들의 화폐는 증발해 과대평가돼 있었지만 전쟁 이전의 환율로 출발했기에 각국은 고평가된 자국 화폐로 미국 자동차 수입을 원했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비축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식환율이 달러를 저평가하고 여타 화폐들은 높게 평가하면서 달러 부족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1950~1960년을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은 전후 인플레이션 정책을 지속한 반면 유럽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통화 정책을 추진했다. 달러는 점점 과대평가되기 시작했다. 달러의 구매력이 떨어지자 이제 각국은 더 이상 달러를 쌓아두려 하지 않게 됐다. 1960년대 말까지 유럽에 유로달러가 800억달러나 쌓였고, 미국은 금으로 태환하려는 유럽과 일본에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가해 이를 저지해왔지만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미국은 외국의 달러 보유량이 증가하고 금이 계속 유출되자 더 이상 금 교환 비율을 온스당 35달러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1968년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 간 금시장을 일반 금시장으로부터 분리해 온스당 35달러를 유지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한편 특별인출권(SDR)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세계지급준비금을 창설해 궁극적으로 금을 완전히 대체하고 미래의 세계준비은행에서 발권되는 세계지폐로 기능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소량의 특별인출권만을 창설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결국 밀려드는 금 태환 요구를 더 이상 정치적 압력으로 누를 수 없게 됐고 1971년 8월15일 닉슨 대통령은 가격과 임금을 동결하는 조치와 함께 달러의 금 태환 창구를 폐쇄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렇게 금과 달러의 연계가 끊어지자 달러에 환율이 고정돼 있던 다른 나라 화폐들의 금과의 연계도 모두 끊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불환지폐가 발행돼 유통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기억해 둘 점은 화폐의 역사에서 가끔씩 불환지폐가 국지적, 일시적으로 시도됐지만 결코 길게 존속하진 못했다는 사실이다. 악화인 불환지폐가 양화인 상품화폐를 이처럼 과격하게 시장에서 몰아낸 적은 없었다. 과거 금본위제 아래에서 지폐는 금과의 교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표시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특정한 화폐 단위를 표시한 종이로서, 정부로부터 법적 특권을 부여받은 각국 중앙은행들이 얼마나 발행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출렁이게 됐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신중함 이외에 통화의 발행을 제약할 족쇄는 없어졌다. 그런데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나 최근의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각국 정부과 중앙은행은 그런 신중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금의 족쇄를 벗겼더니 일상화된 인플레이션과 극심한 경제적 불안정성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이제 이 판도라의 상자를 어떻게 닫을 것인지가 인류에게 던져진 새로운 숙제가 됐다.
한국경제·한국제도경제학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