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해법, 소셜투자로 찾는다] 사회적기업 '그룹SOS' 아이디어 덕에 노숙인 의료비 예산 75% 아낀 프랑스

(2) 세금 절약한 민간의 창의력

'그룹SOS' 임시치료숙소의 힘
정부 돈으로 응급실만 가던 노숙인, 간단한 검진치료로 비용 최소화

사회적 기업도 흑자내야 한다
300개 사업체 年 8000억원 매출…1만명 고용·수혜자 연 100만명
전직 공무원 루이 마르탱 씨(60)를 노숙인으로 전락시킨 건 술이었다. ‘주당’이었던 그는 틈만 나면 술을 마셨고, 취하면 버릇처럼 가진 걸 주변에 모두 내줬다. 그 많은 술값에, 퍼주기식 ‘기부’에 지친 가족은 그를 떠났다. 길거리로 내몰린 마르탱 씨에게 남은 건 당뇨병과 심장병뿐이었다. 마르탱 씨는 프랑스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모든 프랑스 거주민은 최소한의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법규에 따라 그가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마다 200~1500유로를 해당 병원에 내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노숙인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낮춰준 ‘LHSS(Lits Halte Soins Sante·임시 치료숙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프랑스 사회적 기업 그룹SOS는 노숙인을 위한 임시숙소와 건강센터를 합친 LHSS란 신개념 쉼터를 선보여 관련 정부 예산을 50% 이상 절감했다. 그룹SOS 제공
해마다 늘어나는 복지비 지출로 프랑스 정부가 신음하던 2003년, 프랑스 최대 사회적 기업인 그룹SOS가 눈여겨본 건 ‘병든 노숙인’이었다. 당시 정부의 노숙인 대책은 ‘먹을거리’와 ‘잠잘 곳’을 챙기는 데 집중됐던 터. 병에 걸린 노숙인이 치료받을 곳은 병원 응급실밖에 없었다. 그룹SOS는 노숙인의 건강이 평소 ‘관리’되지 않는 탓에 만성질환이 된 뒤에야 병원에 실려온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상황. 그룹SOS가 내놓은 해법은 ‘임시 숙소’와 ‘건강센터’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곤 정부와 협의를 거쳐 2003년 LHSS를 선보였다. LHSS의 특징은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적인 건강 검진과 치료 기능만 갖추되 부족한 건 전문병원 및 알코올·약물 치료센터 등과의 연계를 통해 해결했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 줄여준 사회적 기업

파리 북부에 있는 ‘LHSS모뵈주’는 40명의 노숙인을 관리하기 위해 의사 한 명과 몇몇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등이 상주할 뿐이다. 자기공명영상, 컴퓨터단층촬영 등 값비싼 의료장비도 없다. 노숙인들은 최대 2개월 동안 이곳에 머무르면서 숙식은 물론 건강도 챙길 기회를 얻게 된다.

로랑스 포트본느빌 LHSS모뵈주 대표는 “상주 의사와 간호사들이 노숙인들을 지켜보면서 문제가 있을 경우 전문병원이나 알코올치료소와 연결해준다”며 “2011년 입소한 마르탱 씨도 관계기관과 협업을 통해 술을 끊으면서 건강은 물론 가족관계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말했다.

서비스의 대가로 LHSS모뵈주가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은 노숙인 한 명당 하루 102유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리시내 일반 병원의 하룻밤 비용(200~400유로)보다 50~75% 낮다. 하루 1500유로에 달하는 전문병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컴퍼니는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프랑스 정부는 그룹SOS가 운영하는 4곳의 LHSS(전체 160개 병상) 덕분에 연간 500만~1500만유로를 아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정부는 LHSS의 ‘비용 대비 편익’을 높이 평가해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룹SOS 직영 LHSS는 4곳으로 늘었고, 다른 사회단체들도 그룹SOS 모델을 모방해 400여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도 이윤추구 기업

LHSS는 그룹SOS가 벌이는 다양한 사업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1984년 문을 연 그룹SOS는 300여개 사업체를 통해 연간 8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사회적 대기업’이다. 고용인원만 1만명, 수혜를 받는 사람은 연간 100만명에 이른다. 성장의 원동력은 창의력이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과거엔 없던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사업일 경우 그룹SOS가 찾은 해법은 ‘세금 절약’으로 직결됐다.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 정부가 눈여겨볼 만한 ‘창조경제’ 사례”(임창규 한국사회투자기금 사무국장)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 중개업도 이런 예다. 그룹SOS는 ‘빈집’ 주인과 저소득 가정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룹SOS가 보증을 서는 만큼 집주인은 정상적인 세입자를 찾을 때까지 ‘용돈’을 벌 수 있어 좋고, 저소득 가정은 헐값에 거주공간을 마련할 수 있어 좋다. 그룹SOS는 또 ‘잠잘 곳이 필요한 가난한 젊은이’와 ‘말벗을 원하는 나이 든 집주인’을 맺어주는 일도 한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500여개 아파트를 운영하며 집이 필요한 극빈층 가정에 임대해주고 있다.

맥킨지컨설팅은 “그룹SOS가 없었다면 정부는 호스텔이나 리셉션센터에 이들을 재우느라 매년 수백억~수천억유로를 더 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많은 사회적 기업과 달리 그룹SOS는 흑자에 민감하다. 잡화 판매점, 케이터링 서비스업체 등 그룹SOS 산하 기업들은 정부 도움 없이 이익을 내고 있다. 전과자와 장애인을 고용하고, 상대적으로 비싼 유기농 원료와 공정무역 제품을 다루면서도 일반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

니콜라스 아자르 그룹SOS 부회장은 “사회적 기업도 엄연한 기업인 만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수익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SOS 산하 사회적 기업 투자업체인 CDI가 투자대상을 고를 때도 이런 원칙은 적용된다. 아자르 부회장은 “그룹SOS는 기부단체가 아니다”며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면 투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룹SOS는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크면서도 연 4~5%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업체 위주로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파리=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