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금융계열사 사장단 대폭 물갈이…금융에 '혁신' 특명

"국내 안주 안된다"

삼성생명 김창수 사장
삼성화재 안민수 사장
삼성카드 원기찬 사장
삼성벤처투자 이선종 사장

증권·자산운용은 유임
올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의 특징은 금융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대거 교체했다는 점이다. 지배구조상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최대 금융계열사 삼성생명의 박근희 부회장이 물러났다.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주요 금융계열사 사장도 교체됐다. 김석 삼성증권 사장과 윤용암 삼성자산운용 사장만 자리를 지켰다. 유례없는 저금리 지속이라는 힘든 경영환경을 새로운 진용으로 헤쳐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새 인물로 ‘저금리 위기’ 돌파 박 부회장은 지난해 부회장에 오른 뒤 1년 만에 삼성사회공헌위원회로 옮기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소 갑작스러운 이동이라 문책성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룹 관계자는 “올초 실시된 경영진단에서 저금리 시대의 대안 준비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전했다. 얼마 전 터진 삼성생명 보험왕이 연루된 범죄가 악재가 됐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룹에선 이런 해석에 고개를 젓는다. 자연스러운 2선 후퇴란 설명이다. 박 부회장 재직 중 삼성생명의 시장점유율은 꾸준했다. 순이익도 연간 1조원대를 유지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를 거치면서 10년간 CEO를 해온 박 부회장이 자연스럽게 퇴진하며 저금리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 창출에 힘을 실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장들이 대거 영전한 데서도 금융계열사에 대한 전반적인 문책이나 경고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차원의 인사임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이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으로 중용됐다. 삼성카드를 이끌었던 최치훈 사장은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 겸 건설부문장으로 보폭을 넓히게 됐다. 안민수 삼성생명 부사장이 삼성화재 사장에 선임된 점도 변화에 대한 의지가 담긴 대목이다. 안 사장은 그룹 미래전략실 금융일류화추진팀장을 맡을 만큼 금융 쪽 핵심멤버다.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의 삼성카드 사장 선임에서도 ‘1등 DNA’를 금융으로 확산해 달라는 최고 경영진의 주문을 읽을 수 있다. 1959년생인 원 사장의 발탁은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관측된다. 회계전문가인 이선종 삼성전자 부사장의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사장 선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일류 금융 만들어라”

주요 금융계열사 사장의 교체는 삼성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금융에서만큼은 여전히 국내시장에 안주하고 있는 아픈 현실이 큰 폭의 인사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새 CEO들은 ‘글로벌 일류 금융회사’로의 도약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해 본 사람들로 새 진용을 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창수 사장은 3년간 삼성화재를 이끌면서 ‘질 경영’을 앞세워 회사를 업그레이드시켰다. 김 사장은 디테일에 강해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보험업의 특성상 삼성생명을 일류로 도약시킬 적임자라는 평가다. 자산운용 전문가인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은 그룹 금융의 미래설계를 맡았던 경력을 살려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강점인 인사통이다. 또 글로벌 마인드가 뛰어나 국내 2위권인 삼성카드를 선두로 이끌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카드업을 금융이라는 테두리로 한정하지 말고 마케팅이나 서비스업 차원으로 격상시키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폭 인사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리스크 테이킹’의 자세로 꾸준하게 투자해야 성과가 나오는 게 금융업인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인사는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 출신 한 금융계 인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위축된 금융업의 진로에 대한 삼성의 고민이 드러난 인사”라며 “삼성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백광엽/김은정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