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채권→주식'…한국은 '주식→채권'

한국은 逆그레이트 로테이션 나타나
국내 증시가 선진국 증시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선 채권에서 주식으로 자금이 움직이는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반면, 국내 시장에서는 채권형 펀드에만 돈이 머무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기관과 연기금 등이 국내 증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채권형 펀드에 자금을 쟁여놓으면서 국내 증시가 ‘역(逆) 그레이트 로테이션’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일 현재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연중 최저 수준인 83조2757억원이다. 지난 10월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면서 기관과 개인 자금이 증시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10월 이후 지난 10일까지 국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오히려 5.43% 감소했다. 연초 이후부터 계산하면 설정액 감소폭이 11.77%로 늘어난다.

이에 비해 채권형 펀드 자금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10월 이후 3.2%, 연초 이후 19.52% 설정액이 늘었다. 10일 현재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56조179억원이다.

채권형 펀드로 자금을 옮긴 주체는 기관과 연기금, 기업 등이다. 이들은 주로 사모형 펀드에 돈을 맡기는 데 6~8월을 제외한 모든 시기에 사모형 채권 펀드에 자금이 순유입됐다. 설정액 기준으로 전체 채권형 펀드의 20%를 차지하고 주로 개인이 투자하는 공모형 채권 펀드 자금은 올 들어 6월까지 늘어나다 7월을 기점으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앞다퉈 주식을 사는 분위기다. 지난달 29일 다우존스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주가가 꾸준히 강세를 보이면서 그레이트 로테이션에 탄력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 베팅하기에는 돌발 변수가 너무 많다고 판단한 기관들이 채권형 펀드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허문욱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동양 사태로 위기감을 느낀 국내 상장사들이 4분기에 부실을 대거 털어내는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문제, 엔화 약세 등의 불안요소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저금리로 은행권 자금이 채권형 펀드로 이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실질 예금 금리는 오히려 소폭 내렸다”며 “주식에서 채권으로 움직인 자금도 있지만 정기 예금에서 탈출해 그나마 기대 수익률이 높은 채권으로 이동한 자금의 규모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레이트 로테이션

Great Rotation. 2012년 메릴린치 자산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 미국의 통화정책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시장에서 빠져나와 위험 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