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혐한류'에 한숨짓는 한국 기업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왕 발언’ 하나로 여행업계에서만 1조원이 날아갔어요.”

일본에서 여행업을 하는 A씨는 저녁 식사 시간 내내 한숨을 쉬었다.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으로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는 반한 감정의 시발점을 작년 8월로 꼽았다. 이 전 대통령의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이 나온 때다. “피해금액이 1조원이나 되나요?”라는 질문이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올 들어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이 100만명 이상 줄었습니다. 비행기값을 포함해 일본인 관광객 한 명당 쓰는 돈은 130만원 정도입니다. 100만명에 130만원을 곱하면 어떻게 되죠? 1조원을 훌쩍 넘지 않나요?” 한·일 관계 악화로 피해를 보는 곳은 여행업뿐만이 아니다. 주일 한국대사관이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 있는 ‘코리아타운’의 음식점 매출은 올 들어 평균 50%가량 줄었다. 한류붐으로 호황을 누렸던 화장품 등도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일본 소비자 9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국산 제품에 대해 기능과 가격 면에서는 만족한다고 대답한 일본 소비자 가운데 단지 “한국산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10%에 달했다. 재작년 월평균 4000만건에 육박했던 일본 내 한류사이트 WK의 페이지뷰도 최근 들어선 1000만건 수준으로 줄었다. 일본의 일부 유통업체들이 한국 납품업체들에 되도록 한국산임을 부각하는 형태의 프로모션은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다.

올 들어서는 환율마저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철강회사들의 경우 원료는 달러로 결제하고 최종 제품은 엔화로 수출하는 형태여서 엔화 약세에 따른 영향을 매우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 새 정권이 들어선 지도 벌써 1년. 하지만 아직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못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국면이다. 정말 이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은 걸까? 들끓었던 감정은 가라앉히고 차분히 답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