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생풍수는 '힐링의 지리학'이다

어느 땅이든 결함 있어…명당만 찾기 보단 결함 보완해 상생 이뤄야

한국풍수인물사
최창조 지음 / 민음사 / 532쪽 / 3만5000원
1997년 방북한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황해도 사리원의 정방산성 안에 있는 성불사의 풍수지리적 입지를 설명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완전한 땅은 없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 없는 것은 없다.”

풍수를 잡술 수준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풍수전문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풍수는 명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땅의 결함을 잘 치료하고 보완해 사람과 땅의 상생과 조화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당에 묘를 써서 후대의 복을 기원하는 중국식 음택풍수, 술법풍수와는 궤를 달리한다. 신라말 도선국사로부터 비롯된 자생풍수다.
《한국풍수인물사》는 최 전 교수가 이런 시각에서 자생풍수의 기원인 도선국사로부터 무학대사를 거쳐 이중환 정약용 홍경래 전봉준 최제우 등으로 이어지는 자생풍수의 장대한 역사와 계보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는 자생풍수의 기원과 역사를 찾기 위해 선사시대 고분부터 ‘삼국유사’ 등에 나타난 전승설화,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을 검토하는 한편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말라’는 풍수 원칙에 따라 직접 전국의 명산대찰을 뒤지고 북한까지 답사했다.

20여년의 답사와 연구 끝에 저자가 결론 내린 자생풍수의 두 가지 사상이 개벽과 비보(裨補)다. 자생풍수의 비조인 도선국사는 분열된 후삼국의 통일과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야 할 당위성을 풍수를 통해 설파했다. 고려의 묘청과 신돈, 조선의 홍경래와 전봉준은 부패한 왕조의 개혁 내지 혁명을 꿈꿨고, 무학대사는 고려의 몰락과 새 왕조의 출현을 정당화한 풍수승이었다. 비보사상은 나무를 심거나 연못을 파거나 둑 또는 돌탑을 쌓아 완전하지 않은 땅의 결함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생풍수는 ‘고침의 지리학’이자 ‘치유의 지리학’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축으로 자생풍수의 특징, 도선의 생애와 풍수사상 및 그가 남긴 흔적, 도선의 후예들을 찾아나선다. 또 무학대사의 삶과 한양천도, 서울의 주산 논쟁과 계룡산 천도 논의 등을 살피면서 남사고 이지함 이의신 박상의 홍경래 전봉준 최제우 등 개벽을 꿈꾼 인물들의 풍수적 사고와 흔적도 밝혀낸다.

도선의 풍수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보의 관념이다. 도선은 조계산 선암사, 영봉산 용암사, 월출산 운암사를 비보사찰로 세워 남방의 기운을 북돋워 비보했다.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千塔)은 행주형(行舟形·배가 떠나가는 모양)인 한반도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도선이 세웠다고 한다. 관악산 서쪽에 자리한 호암산(虎巖山)은 산세가 마치 호랑이가 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 호랑이의 목표가 경복궁이므로 이를 억누르고 한양 도성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 호압사(虎壓寺)와 사자암(獅子庵)이라는 얘기다.

자생풍수의 비보사상은 비단 사찰 입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마을의 뒤와 좌우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앞이 훤하게 트인 전북 진안군 하초마을은 앞쪽에 숲을 조성해 기가 흩어져 나가는 것을 막았다. 둑이나 숲, 언덕 등으로 바람과 기운,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비보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맹목적인 환경보호론에 반대한다. 어떤 땅이든 완전하지 않고 결함을 갖고 있는 만큼 그 결함을 보완해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