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엔젤투자 고수에게 듣는다②] '퀵켓' 키운 이택경 "창업가 DNA를 복제하라"

벤처 기업은 창조경제의 '엔진'으로 꼽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경제 불황기에는 벤처 창업가의 창의성과 혁신이 돌파구로 주목 받곤 합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이란 벤처 생태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안될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나선 1세대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후배 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엔젤 투자자'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한국 대표 엔젤투자가들의 투자성공 사례와방향을 본다면, 불황기 타개 전략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 주>
이택경 프라이머 대표
최근 네이버가 모바일 중고장터인 '번개장터'를 개발한 '퀵켓'을 인수하면서 엔젤 투자자에 대한 관심이 또 다시 증폭됐다. 퀵켓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프라이머(Primer)가 발굴한 제 1호 청년벤처로, 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성공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머는 스타트업(신생벤처) 구성 초기 단계부터 함께 해 투자를 집행하고, 성공적인 인수합병(M&A)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라이머 또한 '퀵켓'을 통해 30배에 달하는 투자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택경 프라이머 대표는 "국내는 해외와 달리 M&A가 활성화되지 않아 창업자들이 엑시트(EXIT·창업한 회사를 키워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것)하면서 사업 가치를 인정 받기가 쉽지 않다"며 "벤처 생태계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프라이머가 발굴해 곧 빛을 볼 스타트업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첫 작품 '퀵켓' 엑시트 성공…기업가치 약 100억

"미국의 경우 창업가가 엑시트를 한 후 엔젤투자자로 변신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양에 비해 질이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업계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대표는 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 창업자 출신으로 현재 프라이머의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1월 송영길 부가벤처스 대표,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장병규 네오위즈·첫눈 창업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 등 벤처 1세대 대표주자들과 함께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프라이머는 극초기 단계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한다. 기존의 벤처캐피털(VC)들과 달리 청년들의 창업 과정에서부터 자금 및 서비스, 경영 전반을 지원하는 게 특징이다. 이제 막 시작한 팀의 구성만을 보고 투자하기도 한다.

약 1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진 퀵켓 또한 대표적인 사례다. 퀵켓은 프라이머의 창업 프로그램인 '프라이머 엔턴십' 제 1기 출신이다.

퀵켓의 초기 설립자본금은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프라이머에서 5000만원 이하의 투자를 받고 본격적인 사업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본엔젤스벤처스, SOQRI에서 후속 투자를 유치하며 빠르게 성장했다.이 대표는 "퀵켓의 경우 사업 초반 중고거래 시장의 성장성을 의심하기도 했지만, 실제 거래지표 등이 잘 나와 꾸준히 사업을 키웠다"며 "고객이 좋아하는 게 역시 정답"이라고 말했다. 퀵켓은 설립 3년 만에 네이버에 인수되면서 두 번째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 "여러 번의 고비…연착륙도 중요하다"

현재 프라이머가 육성하고 있는 '프라이머 클럽팀'은 총 25곳이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총 4기를 가동시켰다.
이 중 맞춤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리얼트립'은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후 실제 이용자가 30배 이상 증가, 국내 대표 VC인 본엔젤스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았다.

대학생에게 무료 프린팅 서비스를 제공 중인 애드투페이퍼와 패션 소셜네트워크(SNS) 스타일쉐어 역시 '시리즈 A'(통상 3~5억원 수준) 투자를 유치하는 등 벤처 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보통 벤처 극초기 단계에서 투자를 한다는 것은 포커게임에서 카드 한 장만 보고 돈을 거는 것과 비슷합니다. 프라이머는 비즈니스 모델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해당 팀입니다. 자질이 뛰어나면 보통 1년이 지난 후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 대표는 특히 국내 스타트업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다 만들어서 내놓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업 단계별로 고객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그는 또 "창업은 여러 번의 고비가 오기 마련이며, 잘 되지 않았을 때 연착륙할 수 있는 계획을 미리 세워놔야 한다"며 "무리한 대출은 절대 받지말고,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대표는 올해부터 스타트업 LP(유한책임 투자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벤처 1세대로서 앞으로 10년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