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KTX 자회사, 개혁이라기도 딱한 수준이지만…

114년 철도 역사상 첫 경쟁 시스템
경영의 비교대상이라도 만들자는 것
불편 감내할 터…끝까지 밀어붙이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코레일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최장의 철도 파업이다. 운송은 물론이다. 산업 현장에도 2차 피해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지하철의 파업 철회로 물류 대란은 모면했다지만 정부와 야권, 노동계의 첨예한 대립에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5000만 국민을 볼모 삼은 철도 노조의 철밥통 지키기는 결사적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투쟁에 철도 파업을 맞물려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보자는 야당의 시도도 사생결단식이다. 여기에 있지도 않은 철도 민영화를 비난하는 ‘기획성 대자보’까지 덕지덕지 나붙어 젊은 층을 들쑤시고 있다. 도대체 수서발 KTX를 자회사로 만든다는 것이 무슨 뜻이기에 이 난리일까. 알고 나면 실망스러운 게 자회사 안이다. 노조는 민영화를 위한 첫 단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수서발 KTX는 코레일이 41%의 지분을, 공공기관이 나머지를 갖는다. 정관은 지분을 다른 곳에 매각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민영화가 아니라는데 노조는 막무가내다. 대통령을 어떻게 믿느냐는 데 할 말이 없다.

그러면 왜 자회사를 세우려 하나. 철도가 독점 구조이다 보니 경영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비교대상 자체가 없다. 그래서 코레일과 경영을 비교해볼 수 있도록 자회사를 세워 경쟁을 해보고, 개선방안도 찾아보자는 것이다. 개혁이라고 부르기도 딱한, 매우 소극적인 개혁안이다.

사실 철도 개혁이라는 건 이런 식이 아니었다. 철도 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김대중 정부 시절, 논의의 핵심은 철도를 노선별로 분할해 민영화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도 모두 민영화 깃발을 내세웠다. 지금의 개혁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과거 정부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철도와 발전, 가스의 민영화를 동시에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는 노조의 연합 파업에 곧바로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도 출범 2개월 만에 철도 파업에 휘말려 민영화 포기를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 시위에 모든 것을 태워먹고 말았고. 그나마 철도청을 시설(철도시설공단)과 운영(코레일)으로 분리하고 운영을 공사화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수서발 KTX도 처음엔 민영화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제2의 철도공사를 세워 운영을 맡기는 쪽으로 급선회하더니, 그것도 여의치 않자 코레일의 자회사로 하자는 안으로 축소된 것이다. 코레일 독점 구조를 뜯어고치자고 코레일을 두 개로 만든다는 것이 해결책일 리 없다. 마찬가지로 자회사를 만든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자회사의 경영과 회계를 코레일에서 독립시킨다고는 하나 코레일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데 뭐는 못하겠는가. 밀리고 밀린 개혁안이고, 고육지책이다.

그렇다고 그 계획을 마냥 폄하할 수만은 없다. 민주화 이후 개혁에 맞서 늘 승리가를 불러온 철도 노조다. 과거 정권이 그들의 목에 경쟁이라는 방울을 달겠다고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모두 실패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경쟁의 첫 단추라도 끼워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 보자는 게 지금의 목표다. 이 계획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코레일의 적자는 지난 6월 기준으로 17조6000억원까지 불어났다. 부채비율이 무려 433.9%다. 그리고도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노조는 민영화라는 유령을 앞세워 6300만원의 평균 연봉을 6.3%나 올려달라며 파업 중이다.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메우고 있다는 사실은 알 바 아니다.

철도를 운영하는 120여개 국가 가운데 국유·국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다. 독점의 폐해 탓이다. 그런데도 연습 삼아 작은 규모의 경쟁이라도 해보자는 개혁안마저 파업으로 거부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잠시의 불편은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이다. 파업에 밀려 국민의 작은 기대마저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