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크리스마스의 소망

무대 위 '덕구'에게서 배우는 성탄의 의미
24일엔 이웃 위한 '마음의 방' 만들었으면

유중근 < 대한적십자사 총재 june1944@redcross.or.kr >
몇 해 전 오늘로 기억한다. ‘빈방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연극 한 편을 보게 됐다. 성탄절을 앞두고 교사와 아이들이 성탄에 관한 연극을 준비하는데, 그중 단역인 여관집 주인 역을 맡은 덕구라는 아이가 연극을 망치는 내용이다. 덕구는 초라한 행색으로 묵을 방을 찾던 요셉과 마리아에게 “빈방 없습니다”라며 매몰차게 거절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요셉과 마리아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방이 있으니 가지 말라”고 말해 연극을 망친 것이다.

연극이야 망쳤겠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덕구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보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마음, 그들의 안타까움을 공유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 절실하다. 적십자사는 얼마 전 부산에 사는 21세 미혼모로부터 한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 “힘든 생활로 인해 늘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1주일에 두 번씩 방문해주는 봉사원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매주 바쁜 시간을 쪼개어 미혼모 가정을 방문하고, 진심 어린 조언과 위로로 삶에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했을 적십자 희망풍차 봉사원의 모습이 덕구의 모습에 오버랩됐다. 자신의 영역 안에 이웃을 위한 방을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봉사원들, 이들의 사랑과 봉사가 소금같이 녹아들어 나눔 문화의 맛을 낸다.

24일 오늘, 서울 명동에서는 덕구를 쏙 닮은 ‘레드 산타클로스’들이 명동을 뒤덮을 것이다. 적십자사에서는 시민과 함께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레드 산타클로스’ 후원자 찾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 ‘나눔 미션’을 위해 지난 11월1일부터 함께 후원자 찾기에 힘써 온 ‘레드 산타’들이 오늘 명동에서 한자리에 모여 ‘산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 대신 나눔을 가르쳐 주는 ‘사랑나눔통장’을 만들어 후원하면 어린이의 이름으로 달마다 통장에 사랑스티커가 붙는 ‘사랑나눔통장’ 캠페인도 진행한다. 나눔 미션에 참여해준 많은 젊은이와 시민. 이들이 내어준 마음의 방에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웃이 자리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더불어, 덕구의 마음으로 기꺼이 주위를 돌아보는 데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내어준 젊은이, 봉사원들과 작은 정성과 마음을 나누는 모든 이에게 그 어느 해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란다.

유중근 < 대한적십자사 총재 june1944@redcros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