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남수단의 실탄 1만발
입력
수정
지면A27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나일강 중상류의 수단이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통치령에서 독립한 것은 1956년. 하지만 아랍계 북부와 비아랍계 남부는 쉽게 융합하지 못했다. 수단 내전이 50년간 지속된 배경이다. 이슬람 정책에 반대한 서쪽 다르푸르 지역의 2003년 봉기는 특히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20만명 이상 숨진 ‘다르푸르 사태’는 이후에도 수년간 이어졌다.
유엔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남부 수단은 2011년 2월 분리독립 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99% 찬성으로 그해 7월9일 남수단은 독립국가로 탄생했다. 닷새 뒤 193번째 유엔 가입국이 되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해 왔다. 공병과 의무부대인 국군 한빛부대도 전쟁에 찌든 남수단의 재건 지원에 동참했다. 280여명의 파견 장병은 현지 보르공항 확장, 쓰레기매립장 건설 공사를 수행했다. 의료, 방역에도 나섰다. 유엔남수단임무단(UNMISS) 지휘 하의 미션이었다. 7500여명의 유엔지원단 활동에 보람도 없이 최신생국 남수단의 독립이 위기를 맞고 있다. 독립과정에서 동지였던 대통령과 부통령의 반목 때문이다. 지난 7월 키르 대통령은 옛 동지 마차르 부통령을 전격 해임했다. 하지만 그건 분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정·부통령의 뒤에는 이 나라의 양대 부족이 버티고 있다. 결국 지난 15일 마차르가 이끄는 반군은 수도 주바에서 정부군과 유혈 충돌했다. 삽시간에 내전 양상으로 비화했다.
반군의 화력이 만만찮다고 한다. 수십년 독립투쟁 과정에서 정부군 못지 않은 전투력도 갖췄다. 이 나라 재정수입의 99%를 대는 유전이 열흘 새 속속 반군에 넘어갔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하루 생산 25만배럴에 그치지만 국제유가까지 들썩이게 한 것은 매장량이 30억배럴에 달하기 때문이다. 부족싸움이 원유가격까지 뒤흔든 꼴이다.
정작 더 큰 불똥은 한빛부대에 튀었다. 전투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소총과 약간의 탄환만 소지한 터였는데 남수단 10개주 중 5곳이 전쟁터가 돼버렸다. 엊그제 한빛부대가 현지 일본군에서 탄환 1만발을 빌린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하필 일본부대였다. 일본군의 해외파병 문제로 가뜩이나 논란이 많았다. 청해부대(소말리아 해역) 오쉬노부대(아프가니스탄) 아크부대(UAE) 동명부대(레바논)까지 합치면 부대 단위로 나간 국군은 총 1163명. 국가안전과 국익에 부합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파병이라면 유엔의 요청에 적극 응해도 좋다. 그러나 어디서나 군장은 기본이다. 도로를 닦든, 예방주사를 놓든 군인은 군인 아닌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