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22년간 테러·소요사태 '0'…마하티르 다시보기

마하티르와의 대화
톰 플레이트 지음 /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355쪽 / 1만5000원
‘말레이시아 현대화의 아버지’ vs ‘경제 개발에만 치중한 독재자’.

1981년 말레이시아 제4대 총리로 취임, 2003년 자진 퇴임까지 22년간 재임했던 마하티르 빈 모하맛(88·사진)에 대한 상반된 평가다. 그는 가난한 농업국가였던 말레이시아를 중진국의 위치로 올려놨고,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 모델을 모방하는 동방정책의 창시자이자 아시아적 가치의 대변자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최고 독재자로서 헌법을 뜯어고쳐 전권을 휘두를 수 있도록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균형과 견제 시스템을 허물어뜨려 말레이시아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마하티르와의 대화》는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아시아 정보통’으로 꼽히는 칼럼니스트 톰 플레이트가 2009년 마하티르 전 총리를 네 차례 단독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대담집이다. 저자는 그의 이분법적 정치 이력을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마하티르를 ‘세계주의적 비전을 품은 온건한 주류 이슬람 지도자’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적 가치의 참의미,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거부한 이유,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대하는 자세, 반유대주의자라는 소문의 진실 등을 두고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간다.

저자는 마하티르의 정치 리더십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배경을 심층 탐구한다.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60% 이상이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이자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기타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과격파’ 이슬람 종교 정당도 버젓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럼에도 마하티르가 통치하는 22년간 단 한 건의 테러나 소요 사태도 발생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마하티르는 쿠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비폭력을 강조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을 대할 때 경제·정치 논리를 내세우지 않고 종교적 가르침으로 설득했다. 중국계에 비해 경제력이 떨어지는 말레이계의 폭동을 방지하기 위해 말레이 우대정책을 펴기도 했다. 저자는 “‘테러와의 전쟁’에 급급한 미국이 종교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통제하는 마하티르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