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김과장·이대리님들이 한국 경제 기둥입니다…덕분에 2013년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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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도 우리 모두 말처럼 힘차게 달립시다‘대한민국의 모든 마흔 살 청춘에 그리고 1990년대를 지나 쉽지 않은 시절을 버텨 오늘까지 잘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바친다. 우린 참 멋진 시절을 살아냈음을. 빛나는 청춘에 반짝였음을.’
2013년 나를 울리고 웃겼던 사연들
괴롭히는 부장 복수하려고 인사상향평가서 C주고
메일 날렸는데 이런, 수신이 '전체메일' 모드
케이블TV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마지막회 내레이션이 흘러나오자 이 차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해 나이 마흔, 93학번인 그는 이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이어지는 삼천포(극 중 인물의 별명)의 대사는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지금은 비록 세상의 눈치를 보는 가련한 월급쟁이지만 이래 봬도 우린 대한민국 최초의 신인류였으며 X세대였다.’ 이 차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그래. 나도 왕년에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 삶이 힘들더라도 뜨겁게 살아보자!’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악몽 같은 일들도 지나고 보면 한 편의 추억일 뿐이다. 2013년 김과장 이대리들을 울리고 웃겼던 사연을 재구성해 봤다.
○잘못 보낸 이메일…“사표 내야 하나요?” A그룹 입사 4년차인 한 대리는 직장생활 최대 고비를 맞았다. 해선 안 될 실수를 저지른 탓이다. 사건의 발단은 인사고과 평가에서 비롯됐다. 이 그룹은 전 직원이 직속 상사를 대상으로 상향 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부하 직원들에게 C 이하를 맞으면 승진 누락 등 인사에 불이익을 준다. 평가 결과는 비공개로 어떤 점수를 주든 자유다. 그러나 ‘인지상정’인지라 상사가 미워도 최하 B를 주는 것이 관례다.
한 대리는 최근 같은 부서 김 부장과 의견 차이로 잦은 마찰을 빚어온 터라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연말 밀려드는 업무에 정신이 없던 그는 평가기간이 끝나기 하루 전날 이메일함을 뒤져 ‘하반기 인사고과 작성 안내’ 공지를 찾아냈다. 심혈을 기울여 평가서를 작성한 뒤 회신을 눌러 전송을 마쳤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한 한 대리의 사내 메신저는 불이 났다. “야, 너 미쳤어? 부장에게 C를 주면 어떻게 해!” “회사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알고 보니 부장 평가서가 회사 전 직원에게 발송된 것이었다. 한 대리는 인사팀이 보낸 단체 메일에 답장을 한 일이 생각났다. 전체 답장 모드로 설정해 놓은 게 화근이었다. 평가서를 잘못 썼다고 사과했지만 김 부장은 ‘부원 관리를 잘못한 탓’이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회사에 소문이 쫙 퍼져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어도 받아주려는 곳이 없어요. 사상 최악의 취업 대란이라는데 사표를 써야 하나요.”
○마지막 축제…잊지 못할 신입사원 연수 올 하반기 B그룹 입사에 성공한 유 사원은 신입사원 연수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꿈에 그리던 회사에 합격한 그는 연수원에서도 한껏 들떠 있었다. 교육기간 중 폭풍 과제가 쏟아졌지만 팀원들과 밤을 새우며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이 즐거웠다. 연수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지방 현장실습이 끝난 뒤 신입사원을 환영하는 뒤풀이 자리가 마련됐다. 현지 공장장은 40도가 넘는 고량주를 연거푸 권했고 유 사원을 비롯한 동기 6명은 두어 차례 받아 마셨다. 연수 중이라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거절할 수 없어 넙죽넙죽 받아 마시다 보니 정신이 점점 혼미해졌다. 술에 잔뜩 취한 그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근처 호텔에서 눈을 떴다. 휴대폰에는 부재중 통화 수십건이 남아 있었다.
회사에는 신입사원 총 집합령이 떨어졌다. 연수원으로 달려가 보니 연수원장부터 인사팀 임원들이 신입사원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군기를 잡고 있었다. 연수원장은 “어제 술을 마신 것 때문에 회장님이 노발대발해 관련자들의 합격을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관련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순간 술자리에 참석했던 차장과 과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술이 덜 깬 신입사원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놀라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이때 갑자기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폭죽이 터지면서 생일 케이크가 등장했다. 연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한 깜짝 파티였던 것. 신입사원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를 보내고…떠나는 자와 남는 자 연말 인사는 ‘살아남은 자’와 ‘떠나는 자’를 갈라놓는다.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이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지난 27일 기업은행은 울음바다가 됐다. 조준희 전 행장의 이임식이 있던 날이다. 직원들을 눈물 흘리게 만든 것은 조 전 행장과의 이별 말고도 또 있었다. “격무에 시달리다 안타깝게도 우리 곁을 떠난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영원히 안고 가야 할 마음의 빚입니다.” 조 전 행장은 이임사에서 임기 중 질병과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난 고 백훈기 지점장부터 김여진 계장까지 직원 9명의 이름과 직책을 하나하나 불렀다. 그가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부르자 직원들의 감정은 더욱 복받쳤다. 조 전 행장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바람에 이임사는 중간에 몇 번 끊어졌다.
본점 대강당을 빼곡히 채운 400여명의 임직원은 울음 섞인 이임사를 들으며 일제히 숙연해졌다. 기업은행 직원은 “같은 일터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를 소중히 생각해야겠다”고 말했다.
전예진/박신영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