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원환율 장중 1000원 붕괴] 1년만에 사상최대 20% 폭락…"2014년 100엔당 950원 갈수도"

심리적 지지선 무너진 원·엔환율

원·엔환율 10% 하락땐 수출 3% 감소 전망…조선·車·전자 직격탄
< 세자리 환율 초읽기 > 30일 100엔당 원화 환율이 5년3개월 만에 장중 한때 1000원대를 밑돌며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이날 서울 명동 외환은행의 딜링룸. 연합뉴스
원·엔 환율이 5년여 만에 장중 100엔당 900원 선으로 떨어지면서 엔저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2월 1차 ‘엔저 공습’ 이후 한국 수출은 근근이 버텨왔지만 내년부터는 타격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 이후 엔저 상황에서도 수출이 감소하다가 지난 6월에 저점을 기록한 뒤 증가하고 있다.

○연간 사상 최대 낙폭 올해 원·엔 환율은 1002원9전에 마감되면서 작년 말(1247원50전)보다 250원가량(19.7%) 하락했다. 이는 연간 낙폭으로는 사상 최대다. 장중에는 1000원 선도 무너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급등세를 보인 원·엔 환율은 그해 12월 1600원까지 치솟은 후 지난해 9월까지 1400원대에서 움직였다. 이후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하면서 떨어지기 시작해 15개월 만에 30% 이상 하락했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아베노믹스 효과로 엔저에 대한 방향은 다들 예상하고 있었지만 하락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며 “심리적 지지선마저 무너져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은 1050원에서 지지받고 있긴 하지만 엔·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원·달러가 현 수준에서 유지된다 해도 엔·달러가 110엔이면 원·엔 환율은 950원까지 떨어진다”며 “내년 1분기 중 950선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시장 잠식 우려
최근까지 한국 수출은 4개월 연속 하루 평균 20억달러를 넘으면서 엔저에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부문에서 수출 경쟁력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일본의 엔저 효과가 점차 가시화되면서 한국 수출기업의 부정적인 영향이 점점 확대될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수출기업들이 올해는 채산성을 중시했지만 수출단가 인하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장점유율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수출은 하반기 들어 조금씩 증가해 지난 11월 한달 간 600억달러를 넘었다. 일본이 시장을 확대하면 그 피해는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수출기업으로 전가될 공산이 크다. 채산성 악화도 문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연평균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엔,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 됐을 때 제조업 영업이익률이 1.4% 하락(2012년 기준)한다고 분석했다. 자동차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7.7%에서 3.3%로 절반 이상 깎이고, 전기전자업종도 7.6%에서 4.0%로 3.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한국의 대일 수출은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철강제품 휴대폰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지난 2월부터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역대 여섯 번째 장기 수출 감소세다.
○새해 경제운용에도 차질

외환당국은 원·엔 환율 하락이 일시적 현상이 아닐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급격한 원·엔 환율 하락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시장 개입성 발언을 내놨다. 엔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정부의 내년 경제운용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오 교수는 “내년 수출이 6.2% 늘어나 경제 전체가 3.9% 성장할 것이라는 정부 전망치가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경우 수출은 3%가량 감소해 내년 수출액이 올해보다 400억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단순히 환율 영향만 따진 것이지만 미국과 유럽 경기 개선에 따른 수출 증가 기대분을 잠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 원·엔 환율은 엔·달러와 원·달러에 의해 간접적으로 결정되는 재정 환율이어서 마땅한 대처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직접 시장에 영향을 주기도 어려운 만큼 미시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환/김유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