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작은 이익 너머 진정한 이익을 보자

"답답한 정치·경제, 불안한 국제환경
나혼자 고집 내려놓고, 시선을 넓혀
전체를 위한 게 무엇인지 살피기를"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시민들은 모두 답답할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선 터라, 산뜻한 한 해가 되리라는 기대가 크든 작든 있었을 터인데, 나라살림이 오히려 어려워졌다.

가장 답답한 분야는 역시 정치다. 일마다 집권 세력과 반대 세력이 거세게 다툰다. 긴 전선에서 양쪽이 진지를 마련하고 백병전을 하는 형국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듯하다. 경제학자들이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이라 부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시균형의 전형적인 경우는 군비 경쟁이다. 한번 군비 경쟁에 들어서면, 발을 뺄 수 없다. 일방적으로 군비를 감축하면, 상대에게 군사적 우위를 내준다. 지금 집권 세력이나 반대 세력이나 자신의 일방적 양보가 상대의 상응하는 양보로 이어지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상대는 그런 양보를 돌파구로 삼아서 더 큰 전과를 노리리라고 여긴다. 불행하게도, 그런 판단이 그리 틀린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오래 갈 것이다. 외부의 충격이 작용해야, 즉 선거에서 시민들의 명확한 판정이 나오거나 국제 환경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있어야, 답답한 상황이 풀릴 수 있다.

경제는 더 어렵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연원과 내용에서 시장경제에 적대적인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선거에서 이념적 전선이 아예 사라졌다. 그 공약 덕분에 선거에서 이겼다는 지적이 나오겠지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이미 시장경제를 허무는 민중주의적 정책들이 어지럽게 나왔다. 무엇보다도, 현 정권이 방향 감각을 잃었다. 자연히, 자유화를 통해서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 부진하다. 철도와 관련된 사소한 일로 공기업들의 민영화를 포기하겠다고 거듭 약속한 데서 이런 사정이 괴롭게 드러난다. 민영화를 통해서 공기업들의 부패와 비효율을 원천적으로 줄이지 않고서, 어떻게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고 도덕을 함양할 수 있겠는가?

국제 환경도 걱정스럽다. 중국은 커진 국력을 과시하며 점점 공격적 태도를 드러내고 우리의 동맹인 미국의 힘은 줄어든다. 일본과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해서, 중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크게 약화됐다. 북한의 위협도 더욱 커졌다. 이처럼 어렵고 답답한 상황에서 시원스럽게 벗어날 길은 없다. 가능한 정책들 가운데, 그래도 나은 것을 고르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애쓰는 길뿐이다. 하긴 그렇게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시민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또렷이 인식해야 한다. 누구나 눈앞의 이익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 전체의 이익은 보기도 어렵고 추구하기는 더 어렵다. 그래도 우리 마음속엔 도덕심이 있다.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를 맞아, 청마 유치환의 시구를 뇌어본다.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哀憐)에 빠지지 않음은/ - 그는 치욕임일레라.’

‘나’에 대한 사랑이 일신의 이익에 머물면 그것은 열렬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사랑의 뜨거움은 대상의 크기에 비례한다. ‘나’의 외연에는 한계가 없다. 자신과 가족을 넘어 민족과 인류에 이르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생명체들에 이른다. 성인(聖人)만이 진정한 자기 이익을 알아본다는 버트런드 러셀의 얘기는 바로 그 점을 가리킨다. 필부필부(匹夫匹婦)인 우리가 성인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때로 성인 흉내를 내서 눈앞에 어른거리는 작은 이익 너머를 살피고 거기 존재하는 진정한 이익을 알아볼 수는 있다. 그렇게 하라고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요구할 수는 있다.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